[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91일 차
다원화 시대다. 아니 다원화를 넘어 개인화 시대다. 누군가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야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기 힘들다. 대중적임을 좇는 것은 좋지만 대중적임을 강요하기는 힘들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작은 사람들이 참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은근슬쩍 다름이라는 키워드로 타인을 피곤하게 하는 부류가 있다. 이 정도면 당신의 마음을 분명히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다들 코로나로 예민한데 대체 왜 마스크를 안 쓰는 건데. 당신은 벗는 게 숨쉬기 편하다며 (그걸 누가 모르겠냐) 왜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건데. 지금도 전철 방송으로 마스크를 쓰라고 방송이 나오고 있다.
나의 분명한 의사 전달이 고집이 되지는 않길 바란다. 불통 소리를 들어가며 개인의 이익을 찾아 남에게 피해를 주느니,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대로 피해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살겠노라. 함께 사는 세상에 고집불통 같은 사람이 되느니 콱 그냥 죽어버리겠어!
91일 차의 어제, 고집불통 인간들로 가득 찬 개인화 사회가 살기 힘든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91일 차의 오늘은 나부터 고집불통 인간이 되지 않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