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12일 차
사람을 잠시 멀리하라는 정부, 그리고 그 필요성을 아는 우리는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다. 밤 9시면 닫히는 식당과 술집이 처음에는 불편하면서도 불만스러웠다. 자신이 잘 지키고 소신껏 해내면 되는 것을 이렇게나 국가가 나서서 난리를 친다니 원. 그런데 지금은 싹 마음이 바뀌었다. 내가 짧은 생각을 했던 거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 나는 많은 것들이 변했다. 많은 것들이라는 말은 많은 생활을 말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 결코 쉽지 않았다.
1. 코로나 코로나 노래를 부르는 지인들이 가끔은 넌저리 난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그 잔소리도 만나야지 할 수 있었다. (잔소리가 그립더라)
2. 요 며칠은 입 다물고 살았다. 어찌나 근질거리던지, 엄마랑은 사이가 더 좋아졌다. 영국은 요란한 이 바이러스 때문에 부부들이 몇 배나 더 이혼을 해댄다고 한다는 것을 보면 다행이다.
3. 고요함이 익숙지 않은 나였다. 혼자 많은 것들을 잘 해왔다고 느꼈는데, 그건 단순히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타로 해결하는 일을 잘 해내 온 모양이다. 고요함은 날 무기력하게 만든다.
4. 약속이 없으면 돈이 모인다고 누가 그러던가. 혼자서 온몸이 뻐근해서 배달 어플 평소보다 5배는 더 누른다. 그리고 그 익숙함에 바깥 음식을 예년보다 더 많이 먹었다.
5. 랜선이어도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한 번은 극진히 친한 누나에게 전화가 왔었는데 남자 친구가 구박할까봐 괜히 책 잡힐 이유를 만들고 싶지 않아 조심하고 고심하다 이제야 전화를 한단다. 나는 너무 괜찮은데 미안해하길래 내가 더 미안했다.
6. 할 말이 이렇게도 많다. 쭈구리 같은 집콕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고, 내가 본래 하던 일상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정말 생각보다.
어제는 서로의 부족함까지 챙기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친한 형(빠른 년생을 쓰시는 최 모씨)과 통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만남이든 통화든, 주변 지인들과 딱히 그렇다 할만한 '마음 통함'이 없어왔기에, 무의식적으로 그 통화가 신났었나보다.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꺼내면서, 이런 주절주절 꺼내는 나를 인지하면서도, 계속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나를 내 자신이 용인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느꼈다. 이런게 '코로나 블루'인가.
말로만 들었지, 나 조차도 이것이 '블루'라고는 체감하지 못했다.
- 그저께 인스타그램에 올린 3년 전 퀘백 사진, 배달 어플에 채워지는 많은 음식들, 유튜브 알고리즘이 풍경과 체험으로 초점을 이동한 것,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한숨의 빈도가 늘어난 것, 언제쯤 끝날까 속만 앓고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며 포기해버리는 것
어제를 포함한 최근의 나에게 요동치는 감정들이 바로 '블루'인가.
이 고요함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결국 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갈라 놓은 우리의 명확한 선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게 될 듯 하다. 비대면으로 회의를 밥먹듯이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나에게 블루가 깊이 자리했겠지만, 이 블루가 더 큰 블루가 되지 않도록, 고요함을 고요하지 않도록 나 자신만의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 SNS를 더 열심히 해봐야하나.
12일 차의 어제, 블루에 대한 인지와 두려움, 12일 차의 오늘, 블루에 대한 행동과 한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