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23일 차

by 이민호

커 가다 보면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춰가는 일이 생긴다. 그렇기에 그 잣대가 내 마음속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그렇게 하겠냐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며, 내 자존심을 단정 짓고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한 가치를 무심히 지르밟곤 한다. 그깟 자존심이 뭐길래.


어제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어머니와 밤늦게까지 TV를 봤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도 없이 TV만 보기 딱 좋은 분위기였는데, 한동안 핫한 프로그램인 <미스 트롯>이 시즌 2를 시작했다. 이렇게나 우리나라에 노래를, 그리고 트롯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니 원.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보다가, 깜짝 놀랐다. '버블시스터즈의 영지'가 도전자로 나온 거다. 내 어릴 적 뮤지컬 무대나 MP3 플레이어, 전자사전까지 접수했던 그 버블시스터즈였는데.. 게다가 노래는 기똥차게 잘하더라. 심사위원 중에 '임영웅(미스터 트롯 우승자)'이 있었는데, 대학 신입생 때 교수님이 바로 버블시스터즈 영지였다고 밝히더라. 세상 일은 정말 모르겠더라.

영지의 합격 소식 이후, 심사위원 석에서는 술렁였다. 나는 나오래도 못 나왔다면서, 내 자존심이 있어서 절대 못 나왔을 거라면서, 영지님이 정말 대단하다면서.


같이 보고 있던 어머니는 말하셨다. 세상에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널렸는데, 그리고 트롯 무대라고 불평하지 않고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얼마나 노래할 곳이 막상 없는 것인지. 다들 자존심이 없어서 이런 게 아닐 텐데, 간절함의 차이 아니겠냐며. 그깟 자존심이 뭐길래.


내가 하는 많은 것들에 자존심을 세우곤 한다. 일이든, 사랑이든, 인간관계든, 그 무엇이든 자존심을 세우곤 한다. 글쎄, 돌이켜보니 그깟 자존심이 뭐길래 곤두세워왔던 것인가. 어제 어머니 말씀처럼, 하고 있는 것들에 간절함이 부족했던 것인가. 정말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있노라면 과연 내 마음에 자존심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까.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추는 일이 생겼을까.


23일 차의 어제, 간절한 이들에겐 자존심이 없다고 느꼈고, 23일 차의 오늘, 나도 무엇인가에 간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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