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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Sep 02. 2020

아득바득 사는 자신이 꽤 딱하면서도 편하다는 것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2장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몇 년, 그리고 지금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그것도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나 부리는 것이라며, 툴툴 거리는 말을 내뱉으며, 저 자신을 지독히도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내가 그중 하나다. 근데 그러고 보니 나는 대체 무슨 여유가 없었기에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인가.


버릇 같은 건가. 생산적인 일상을 포기할 수 없는 버릇. 약 30년을 채워가는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를 어떻게든 꽉꽉 채워서 생산율 90% 이상으로 뽑지 못하면 마음이 조급하고 심장이 쿵쾅 뛰는 버릇. '왜 이렇게 살지, 왜 아무 기여도 하지 못하고 살지' 하는 조급함을 늘 가지고 사는 버릇.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내가 소파에 앉은 모습에 이렇게 말하시곤 했다.


"오늘은 할 거 없어?"


내가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거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나를 바라본 어머니도 내가 쉬지 않고 달려온 것에 익숙해진 거다. 가끔은 이런 생각까지 든다. '피곤함 마저도 이제는 익숙하다.' 입에서는 피곤하다는 말도 익숙하다. 그만 좀 말하고 싶지만,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가 피곤하다고 느끼는 게, 그리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게 너무도 익숙하다. 어제까지 일주일의 휴가를 마치고 오늘 돌아온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제발 오빠는 잠 좀 자자, 일찍 좀 자자"


안주하는 것이 힘든 이들에게는 멀리 보는 것이 힘들다. 가까이에서 아득바득 살아온 것이 익숙한 탓이던가. 여유라는 말에 코웃음이라도 치듯, 누릴 자격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그러게 왜 누릴 자격이 없는 건가. 왜 머무르는 것이 무서운 건가. - 여유, 머무름, 안주함에 대하여 - 그리고 그것이 힘든 이들에 대하여 (20200720 내가 쓴 글)


애정결핍 같은 건가. 어떤 부분이 나에게 결핍되어 있기에 이렇게도 나 자신을 채우고자 하는가. 세상사가 힘들고 날 지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함은 아닌 듯하다. 하고자 하는 일에 늘 그렇지는 않았지만, 나름 선방하는 편에 속해왔다. 물류라는 전공을 우수 졸업하고도, 물류가 아닌 마케팅을 선택해 그 길을 꾸준히 밟고 있다는 것만 봐도 좌절보다는 수월히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내고 있는 편이 맞는 듯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훨씬 더 더 잘 나가는 마케터가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 주변에는 사람을 잘 챙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저자신에 투자하는 시간까지 알뜰살뜰 챙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목숨을 걸고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나, 20여 년을 연구자로서 꾸준히 공부하는 이들이나, 쥐도 새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린 공시생이 아닌 이상, 아득바득 저 자신에 투자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포항에서 유능한 엔지니어로 일하는 가장 애정 하는 찐친(찐한 친구의 준말) 중 하나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너는 무슨 공부를 20년을 하고 있어. 언제까지 공부를 할 셈이야. 나는 공부 놓은 지 오래돼서 글씨도 잘 안 써지던데"


'그러니까 말이다. 나도 이렇게 아득바득 사는 내 자신이 참 딱해'


나도 쉬어본 적은 있다. 일주일을 내내 한번 쉬어 봤었다.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웠다가, 티비를 켜고 영화를 세 개 네 개 결제해서 맥주와 함께 즐기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몇 시간을 통화한다거나, 커피 한잔과 함께 문학 한 두 권을 털어버리거나. 그러나 결국 한번 더 느꼈다. 생산 없는 이 작가는 더 이상 이 작가가 아니다. 20년 먹은 이민호(본인)의 생산성이 근질근질 제 할 일을 하고자 꿈틀댄다. 마치 엄마 잔소리에 반응하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는 기가 막히게 어머니의 잔소리에 발끈하잖나. 괜히 그 말에 꿈틀꿈틀 반대로 행동하고 싶어 지는 욕구가 솟구친다. 다시 말하면, 내 스스로가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잔소리처럼 인식해 가쁘게 숨 쉬고 허겁지겁 움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방향으로 리액션한다.


오히려 지금은 아득바득 이런 내가 편하다. 어떠한 형태의 '발전'이든 '개선'이든 그 시작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렇기에, 쉴틈 없이 달리는 내가 그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마치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하다 하다 포기하고 홀로 살기로 마음먹는 일처럼, 아득바득 20년 이상을 살아온 내가 '소확행'이라는 시답지 않은 이슈를 쫓겠다고 일부러 느리게 걷는 일을 소화하다, 근질거리는 두 손 두 발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니 다들, 아득바득이든 세월네월이든 당신스러운 것으로 하는 걸로. 숱한 자기 개발서를 읽으며 그들이 해온 것들을 동경하며 그들의 방식을 따라 하지 않고, 그저 당신스러운 것으로 믿고 움직이는 걸로. 등산로의 방향은 위쪽으로 같을 지라도 그 방식은 각각 다른 형태로 저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꿋꿋이 따르는 걸로. 나에게 아득바득 사는 저 자신이 꽤 딱하면서도 무척이나 편한 것처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2장 끝.


이민호 드림

Instagram @min_how_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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