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3장
스무 살 쯤엔 TOP 100에 집착했다. 그 시절에는 확고한 내 취향이랄 것도 없어서 그저 남들이 좋다는 음악들이 좋다는 식으로 내 취향을 맞춰가며 꾸역꾸역 들었다. 한곡을 반복하는 일보다 상위권 차트에 담긴 30곡 정도를 모두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한마디라도 더 하려면 그런 느낌이 필요했다.
“이거 걔네다. 얘네 실력 좋더라.”
그래서 그런가. 내 또래들은 내가 한참 듣던 그 시기의 노래들을 내가 기억하는 만큼 잘 알고 있더라. 나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들었던 겐가. 아니면 정말 절절한 마음이 찌릿찌릿해서 아직도 그 기억 속에 선명한 것인가.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것은 너와 내가 같은 노래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으 이 노래 알아? 서른 징그러워 죽겠어.)
감성 주점이란 게 꽤나 성행했을 때가 있었다. 목적이 불순한 이들도 숱했지만, 사실 처음에 감주(감성 주점의 준말이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유는 옛날의 노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플레이리스트 때문이다. 고막이 터질 듯한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지만 마치 그 음악이 심장까지 닿는 듯 예전의 추억을 불러 울린다. 서른 즈음이 되어 ‘서른 즈음에’를 듣는 일이 그 얼마나 마음 절절한지. 그날의 감주에서의 기억은 대략 10년 전의 우리가 그날로 잠시 시간여행을 온 마냥 또 다른 추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다음번에 감주를 또 가게 된다.
오늘 모닝 송은 돌핀. 톡톡 튀는 멜로디와 가사로 아직도 한곡 반복으로 듣곤 하는 노래다. (노래 홍보 타임이 아니기에 자세한 정보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들을 때마다 내가 애끼는 사람 중 한 명, ‘칼 같은 이 모양’이 생각난다. 문득문득 로드샵을 지날 때 돌핀이 나오는 것을 듣기는 했었으나, 내 플레이리스트에 겨우 들어온 건 순전히 그 친구 덕이다. 취업 스터디를 했었는데, (나에게 이 스터디는 인생 스터디다.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스터디를 했던 스터디룸 퍼블릭 포인트를 줄여 퍼포라고 부른다) 퍼포 사람들은 다 취업을 했다. 출근에 대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 모양은 단체 톡방 내일 일정에 ‘오늘 모닝 송은 돌핀’을 등록했다. 진짜 갑자기.
“아니 이게 뭔데”
“저게 뭔 소린데”
(문찐들의 반응이다.
내가 설명해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내 아침 출근 송은 돌핀이다. 괜히 나 혼자 출근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늘 누군가 함께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 모양’에게 감사하는 중이다. 분명 돌핀에 모닝 송이라는 의미를 주기 이전이나 이후나 노래 자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런데 이거 원, 골 때리네. 노래가 더 좋잖아.
로맨틱한 영화에선 이따금씩 이어폰을 반씩 나눠 끼우고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이 노래에 대한 내 추억은 어떻게 생겼는지, 이 노래에 대한 너의 첫 느낌은 어떤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우리는 3분의 시간 동안 귀로 들리는 음악만으로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헤어진 이후 그녀가 한 번은 문득 문자를 보내왔다. ‘이건 미련은 아니고 안부’로 시작했다. 왜 보냈는지 보니, 내가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뒀던 음악 때문이었다. 하나둘씩 무뎌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음악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을 보면 가끔은 음악이 지독한 부분도 있는 듯하다.
요즘 너는 어때? 이 음악은 그대론데. 생각보다 나는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하는 일이 일상적이진 않다. 가끔 눌러 놓는 랜덤 재생이나, 잘못 누른 다음 곡 버튼은 나를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시키는 듯 그날의 기억으로 데려간다. 공감되지 않는다면, 플레이리스트를 보자. 음악을 사랑했던 그 누구든지, 플레이리스트가 담고 있는 그 오늘의 음악에서 그때 그 누군가와의 기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거다.
(분명히, 제발, 그렇지? - 약간 코믹이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3장 끝.
이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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