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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Sep 21. 2020

오늘의 음악에서 느끼는 그때의 너와의 기억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3장

스무 살 쯤엔 TOP 100에 집착했다. 그 시절에는 확고한 내 취향이랄 것도 없어서 그저 남들이 좋다는 음악들이 좋다는 식으로 내 취향을 맞춰가며 꾸역꾸역 들었다. 한곡을 반복하는 일보다 상위권 차트에 담긴 30곡 정도를 모두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한마디라도 더 하려면 그런 느낌이 필요했다.


“이거 걔네다. 얘네 실력 좋더라.”


그래서 그런가. 내 또래들은 내가 한참 듣던 그 시기의 노래들을 내가 기억하는 만큼 잘 알고 있더라. 나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들었던 겐가. 아니면 정말 절절한 마음이 찌릿찌릿해서 아직도 그 기억 속에 선명한 것인가.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것은 너와 내가 같은 노래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으 이 노래 알아? 서른 징그러워 죽겠어.)


감성 주점이란 게 꽤나 성행했을 때가 있었다. 목적이 불순한 이들도 숱했지만, 사실 처음에 감주(감성 주점의 준말이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이유는 옛날의 노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플레이리스트 때문이다. 고막이 터질 듯한 무지막지하게 큰 소리지만 마치 그 음악이 심장까지 닿는 듯 예전의 추억을 불러 울린다. 서른 즈음이 되어 ‘서른 즈음에’를 듣는 일이 그 얼마나 마음 절절한지. 그날의 감주에서의 기억은 대략 10년 전의 우리가 그날로 잠시 시간여행을 온 마냥 또 다른 추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다음번에 감주를 또 가게 된다.



옛날 노래 나오는 볼링장만 가는 걸 보면, 볼링을 치러 가는 것인지 추억을 짚으러 가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20180608)



오늘 모닝 송은 돌핀. 톡톡 튀는 멜로디와 가사로 아직도 한곡 반복으로 듣곤 하는 노래다. (노래 홍보 타임이 아니기에 자세한 정보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들을 때마다 내가 애끼는 사람 중 한 명, ‘칼 같은 이 모양’이 생각난다. 문득문득 로드샵을 지날 때 돌핀이 나오는 것을 듣기는 했었으나, 내 플레이리스트에 겨우 들어온 건 순전히 그 친구 덕이다. 취업 스터디를 했었는데, (나에게 이 스터디는 인생 스터디다.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스터디를 했던 스터디룸 퍼블릭 포인트를 줄여 퍼포라고 부른다) 퍼포 사람들은 다 취업을 했다. 출근에 대한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 모양은 단체 톡방 내일 일정에 ‘오늘 모닝 송은 돌핀’을 등록했다. 진짜 갑자기.


“아니 이게 뭔데”

“저게 뭔 소린데”

(문찐들의 반응이다.

내가 설명해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내 아침 출근 송은 돌핀이다. 괜히 나 혼자 출근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늘 누군가 함께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 모양’에게 감사하는 중이다. 분명 돌핀에 모닝 송이라는 의미를 주기 이전이나 이후나 노래 자체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런데 이거 원, 골 때리네. 노래가 더 좋잖아.


로맨틱한 영화에선 이따금씩 이어폰을 반씩 나눠 끼우고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이 노래에 대한 내 추억은 어떻게 생겼는지, 이 노래에 대한 너의 첫 느낌은 어떤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우리는 3분의 시간 동안 귀로 들리는 음악만으로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헤어진 이후 그녀가 한 번은 문득 문자를 보내왔다. ‘이건 미련은 아니고 안부’로 시작했다. 왜 보냈는지 보니, 내가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뒀던 음악 때문이었다. 하나둘씩 무뎌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음악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을 보면 가끔은 음악이 지독한 부분도 있는 듯하다.


요즘 너는 어때? 이 음악은 그대론데. 생각보다 나는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하는 일이 일상적이진 않다. 가끔 눌러 놓는 랜덤 재생이나, 잘못 누른 다음 곡 버튼은 나를 마치 시간여행이라도 시키는 듯 그날의 기억으로 데려간다. 공감되지 않는다면, 플레이리스트를 보자. 음악을 사랑했던 그 누구든지, 플레이리스트가 담고 있는 그 오늘의 음악에서 그때 그 누군가와의 기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거다.

(분명히, 제발, 그렇지? - 약간 코믹이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말해보자면] 3장 끝.


이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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