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의 긍정에 대하여], 40일 차
내가 어머니로부터 크게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면, 그건 대부분 다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할 때일 거다. 누군가가 잘하고 있는 일을 내가 왜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오는 것인데, 나는 그 의문이 생기는 것에 의문이 있을 뿐이다. 같은 환경과 가치관과 신체 조건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 독립체들을 같은 상황에 두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일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으며 그 어떤 공감도 할 수 없다.
최근에 내 동생은 졸업을 했다. 정확히는 2월에 졸업하지만, 학교생활이 끝났다는 말이다. 작년 연말에 국가고시도 한 번에 붙어버리고, 쉬는 기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로는 이제 백수라는 말이다.
어제 어머니는 내 동생에게 주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로 동기부여를 하고자 했다. 쉬는 것을 편히 쉬게 하는 일을 불편해하시는 어머니는, 역시나 동생이 쉬는 일에 편한 마음을 갖지 못하신 것이다. 왜 놀고 있냐고, 왜 이렇게 편하냐고. 각박한 세상을 슬기롭게 살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결국 우릴 위한 말이기에, 이해는 가지만 당장 그때의 저 자신들은 서럽기만 한 듯하다.
동생과 한 바탕하겠다는 어머니,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동생, 비교는 이렇게 집 한 구석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해야 더 잘 먹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이해할 일이라면 못하는 자식보다야 잘하는 자식이었으면 하는 자연스러운 사랑이며 그 사랑의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40일 차의 어제, 어머니가 또 우리를 남들과 비교했고, 40일 차의 오늘, 그런 어머니가 익숙해진 내가 오히려 어머니를 더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