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미삐약이 May 17. 2023

선생님의 꽃은 담임이다? 왈왈!

하면 유병단수, 안 하면 무병장수

담임을 해 본 선생님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학급 배정은 정말로 로또와 같다는 것을....

인생 실전의 로또도 당첨된 적이 없는데 무슨 학급 배정이 로또냐며 공감을 못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제발 딱 일주일만 중학교에서 담임 업무를 실제로 맡으며 아이들과 부대끼며, 그리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시달리며 수업과 담임 일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몇몇 관리자님들께도 하고 싶은 말이다.


초임 발령 후 가장 먼저 주변의 연차가 짱짱히 쌓이신 선배 부장님들께 했던 말은 이거였다. "선생님이 이렇게 힘든 직업인 줄 몰랐어요. 이렇게 많은 일들을 다 해야하는 지 정말 몰랐어요." 그렇게 말하면 부장님들은 하나같이 허허 웃으시며 그렇지? 라고 하시곤 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뭐냐면요.. 일단 거의 초임 때는 담임을 준다. 담임? 힘들기 때문이다. 연차가 쌓이면 나라도 안하고 싶을 것 같다. 당연히 저경력이면 담임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선배 교사님들이 계실 수 있다. 맞는 말이시긴 한데요. 저희도 나름대로 억울한 사정이 있어요. 이런 나와 결을 같이 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MZ세대 교사라고 통칭 당하긴 싫다. 내가 느끼기에 툭하면 붙는 MZ세대란 수식어는 인성 탑재도 안 되고 진화도 덜 된 싸가지가 없는 젊은 꼰대를 말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선생님의 꽃은 담임이다(?)라는 개소리...(이제는 개소리가 될 때도 되지 않았나요)를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공감한다. 왜냐하면 담임을 하면서 학급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학교 내에서의 소속감도 생기고, 우리반 애기들이 내 눈에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고, 우리반이 공부든 운동이든 수업태도든 성적이든 뭐든 제일 잘 했으면 좋겠고, 설령 공부 못해도 너무 귀엽고 내 눈엔 마냥 예쁘고, 인성이 훌륭한 애기들을 보면 어쩜 부모님이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셨길래 저렇게 예쁘고 바르게 잘 자랐을까, 정말 내 자식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도 당연히 많이 한다!!! 물론, 담임을 안 한다면 정도가 덜하게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테지만.


당연히 저경력이 담임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선배 교사분들께는 나름의 항변 기회를 갖고자 한다. 초임 때 담임? 좋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수습기간을 제발 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교과지식은 빵빵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바깥에서 아무리 사회생활 좀 하다가 온 사람이라도 학부모를 대하는 노련한 노하우는 전혀 없다. 물론 그 초임의 파릇파릇함과 젊음이란 소통의 자석은 반짝반짝 빛나고 너무나도 강력해서 아이들을 쫙쫙 끌어들인다(하지만 아주 가끔... 희귀한 새싹 불통들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대는 어디서 왔나요). 하지만... 담임의 역할은 아이들과의 소통만이 아니란 것을. 담임의 실제적인 역할은 학부모 상담이라는 것을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신규들은 알고 싶어요, 선배님들의 노하우를요. 신규들은 배우고 싶어요, 선배님들의 노련한 학부모님 상담과 각종 당혹스러운 말들에 대한 대처 방법을요. 이건 정말로 진심이다. 진심이 감히 어느 정도라고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목소리나 외모를 보고서 새파랗게 어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느낌이 드는지 "선생님, 결혼은 하셨어요? 선생님은 아직 결혼 안해서 그래요. 선생님은 아직 애를 안 낳아봐서 그래요. 요즘 입시는 이래요" 등 청산 유수로 우리 신규들과 병아리들을 깎아내리는 학부모들이 참으로 스테디셀러처럼 꾸준하게 있고, 학교의 규정은 싸그리 무시하고 본인들의 마음과 본인 자식의 의견을 절대적인 푯말로 삼고 우리를 좌지우지하려는 규제의 무법자 등... 너무 다양한 사람 유형이 있는데 신규들은 이런 유형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모른다. 삐약이들은 진짜로 모른다.


적어도 초임 발령 교사들의 첫 1년간이라도 담임에서 빼주고 고경력 선생님들이 담임을 하시면 안될까. 고경력 멘토-저경력 멘티 역할이라도 하면 안될까. 학부모님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옆에서 우리도 보면서 배울 수 있도록. 학생을 상담하는 모습도 옆에서 보면서 배울 수 있도록. 그렇게 짧은 기간동안이라도 수습기간을 주면 어떨까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정말 선배 교사 선생님들의 노하우는 정말 어마어마하고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도 진짜 배우고 싶습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도 세미 삐약이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겨우 겨우 세월에 각종 풍파에 목줄이 잡혀 여기까지 끌려왔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노하우가 생기고,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도, 학부모를 상담하는 방법도 알게되고 더 좋은 방법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을 하게 되었다만 그래도 그 수습기간이 정말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우리도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법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을 아픈 화살과 같은 말들로부터 지키기 위한 단단한 방패를 들 수 있는 방법을 간절히 배우고 싶다.


그리고 담임 몇년 하면 담임 안식년제 이거 어디 도입하는 사람 없나? 일 년만이라도 격하게 쉬어보고 싶습니다, 담임!

매거진의 이전글 월급날이 기쁘지가 않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