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지방대 출신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꿈꾸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지역의 대학을 수시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갑자기 급격히 어려워졌다.
대학은 가고 싶었다.
정말, 너무 가고 싶었다.
그래서 현실을 선택했다.
살고 있는 지역의 전문대학을 찾았다.
취업이 잘 되는 곳,
가족에게 부담을 덜 줄 수 있는 곳.
간호과냐, 유아교육과냐.
인생을 좌우할 갈림길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잔인하고 피를 보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나는
간호과 대신 유아교육과를 선택했다.
그때,
나보다 열한 살 많은 고모가
등록금과 입학금을 모두 내주었다.
내 인생의 은인이었다.
나는 무작정 대학에 들어갔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었고,
한 끼 1500원이었던 학식을 먹으며
5천 원으로 이틀을 버텼다.
월요일이면 공예시간 준비물을 사야 했고,
불금이면 친구들과 "대학생이니까" 즐길 수 있는 문화도 소박하게 누렸다.
그렇게,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고,
오로지 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아냈다.
탄탄한 경력을 가진 교사가 되었다.
스카웃 제안을 받았고,
현장에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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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16년.
지금의 남편,
그때는 연인이었던 사람이
"공부를 해보라"고
등을 힘껏 밀어주었다.
나는 다시 펜을 잡았다.
연애를 하면서 학사 학위를 땄고,
결혼을 하고 6개월도 안 돼서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누구에게도 특별해 보이지 않을 이 흔한 이야기가,
나에겐 세상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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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흔하다.
이름 없는 지방대 출신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 이름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살아낸 길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묵묵히,
나만의 꿈을 지키며 걷고 있다.
[다음 이야기 예고]
EP.24
"인서울 한 번 못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름보다 삶으로 증명하는,
내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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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미 같은 길 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