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11번째 죽음이다.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사망 소식에 아는 이는 아니지만 마음이 아팠다. 안타까운 마음에 택배 주문을 당분간 하지 않겠다는 이도 있다. 일부에서는 새벽 배송, 당일배송 등을 없애거나 비용을 더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택배노동자들을 덜 힘들게 하고 돕자는 마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나도 택배노동자들 기사를 보면서 택배 주문을 하는 게 양심에 꺼려졌다.
불필요한 주문은 자제하거나 묶음 배송 주문을 하고, 새벽배송은 되도록 안하는 정도의 주의는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시민 개개인이 노력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택배 시스템이 사라질 수도 없다. 그럴 리 없겠지만 택배 물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 오히려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문제의 핵심은 택배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새벽에 나가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한밤중까지 일하면서 한 달에 200만 원도 못 받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힘듦에 정비례해서 산술적으로 보상이 주어지진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하루 8시간 이상 열심히 일한 사람이 가족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코로나로 비대면 부문 산업들은 급성장 중이다. 온라인 쇼핑몰부터 배송 업체, 포장재 업체의 주가가 뛰어오르는 등 이익을 증명하고 있다. 그 이익이 택배노동자들에게까지 흘러가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에게 감당 못할 물량이 떠안겨지고, 배송하기도 시간이 빠듯한데 분류작업에 몇 시간이 사용된다. 수당도 안 주는 분류작업이 너무 힘들다고 추석 전에 택배노동자들의 항의 사태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찔금 인력을 보충하는 선에서 타협됐고 우리는 주문한 물건들을 받아볼 수 있었다. 왜 노동자들이 한계치를 넘는 시간에, 물량 폭탄을 떠안아야 하는 걸까. 새벽배송, 당일배송을 하기 위해 야간작업이 불가피하다면 합당한 보상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인력을 충원하거나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면 그럴 때마다 수익성이 나빠진다, 가격 인상 요인이 된다고 난리다. 배송으로 이익을 얻고 많이 가져가는 쪽에서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닌가?
TV 프로에서 새내기 기자들이 직업 체험으로 쿠팡 배달일에 도전하는 걸 본 기억이 난다. 땀에 절고 다리가 퉁퉁 붓도록 움직여서 번 돈이 장비를 마련한 비용과 급해서 택시를 탔던 걸 생각하면 정말 쥐꼬리만 했다. 기자들을 보면서 속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기자 되길 잘했다!'라고 수천번 되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비는 시간에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꽤 괜찮은 프리랜서로 홍보되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배송 노동자, 택배노동자들의 삶은 무척 힘들어보였다.
최근 들어 신문에서 택배 상자에 구멍을 뚫으면 노동자들의 부담과 부상이 크게 준다는 기사를 몇 차례 봤다.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본 뒤 상자에 담아 올 때 상자에 손잡이 구멍을 뚫어본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 것이다. 그냥은 들기 힘든 상자도 거뜬히 들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택배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이 개선된다는데, 그 구멍 하나 뚫어달라는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상자 규격을 바꿔야 해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특히 구멍을 뚫으면 무게를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서 많이 쌓을 수 없기 때문에 구멍 주위에 별도의 장치를 해야 하니 상자 단가가 올라간다고 한다. 구멍이 있으면 이물질이나 벌레가 들어가서 위생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위생 문제는 창고 환경 개선 등이 뛰따라야 한다. 결국은 비용이 문제라는 거다. 다시 말해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오후 시간 우리 아파트 동 입구에서는 각 동마다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택배 상자 무더기가 쌓여있는 걸 흔히 본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아이들 키높이로 쌓인 택배들이 잔뜩 실린 채 여러 층을 눌러놓고 도착하면 얼른 택배를 던지듯 내려놓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기를 반복하는 기사들을 자주 보곤 한다. 그 많은 택배들에서 누군가는 큰 이익을 보고 있다. 그 일부가 택배 상자의 구멍으로, 인력 충원으로, 임금 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정당한 분배와 노력 후에 소비자인 우리가 부담해야 할 가격 인상이 있다면 그건 달게 받아들일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기 이전에 노동자이고 투자자이고 사업가이기도 하다.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곧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이익의 흐름이 어디서 고여 썩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흐르게 할 방법이 무엇인지 감시와 감독을 철저히 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근 정부에서 보건의료, 돌봄, 배달°택배, 환경미화 노동자를 '필수노동자'로 정하고 안전 및 보호대책을 논의하는 TF를 꾸렸다고 한다. '필수노동자'란 재난상황에서도 사회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노동자라는 의미다. 이들의 업무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대면 업무를 중단할 수 없는 그야말로 '필수적인' 일들이다. 필수란 이름을 붙여 필요성만 강조하지 말고 필요한만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지만 더 늦어선 안 된다.
더 이상 택배노동자들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기를 바란다. 주문 버튼을 누르며 죄의식을 갖고 싶지 않다. 일단 상자에 구멍부터 뚫자! 택배 노동이 힘들지만 보람 있고 소득 보장이 충분한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