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원으로 창업하기
2019년 코로나가 세상을 정복하고 숱하게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들이 우리의 일상을 잡아먹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에 확진이 되는 순간 신상과 동선 모든 개인정보가 노출이 되는 것은 물론으로 모두의
적이 되어야 했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이던 시기에 서울에 있었던 내가 그나마 용돈벌이로 일하던 모델 일과 촬영들도 모두 올스탑이었다. 만성비염이었던 나, 지하철에 타서 정말 참고 참다가 흐르는 콧물 한 번 훌쩍거리면 따가운 시선과 심지어는 정말 내 옆을 피해 가기 까지도 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수십 년을 자리하던
내 단골 식당들도 폐업 및 임대가 붙기 시작했고, 그야말로 온 세상이 모두 멈춘 것만 같았다.
근데 왜 하필 그 시기에 그 상황 속에서 인생 첫 창업을 결심하고 강행했냐고?
칭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이미 나의 마음속엔 서울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시기 코로나19로 고향에도 헐값의 임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오래 떨어져 있었지만 해당 지역의 특성과 소비패턴 상권에 대해 가장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요소또한 큰 결정적 요인을 했다.
우선 약 천만 원이 되는 돈으로 보증금 권리금 초도물품과 모든 것들을 해결했어야 했다. 따라서 미친 듯이 부동산을 발품 삼아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마침 보증금이 가장 저렴하면서 월세도 부담 없는 수준의 자리가 임대로 나온 것을 보게 되었다. 온통 새까맣게 깜깜한 인테리어와 특이한 구조의 공간을 바라보며 '이곳이다'라는 확신을 얻었던 건 사실 저렴한 임대료가 여기여야 한다는 세뇌를 시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할 만큼 큰 메리트가 없는 곳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나에겐 이곳이다라는 확신이 생겼었다는 것.
마침 청정지역으로 불리던 나의 고향에까지 코로나가 뚫렸고 온 동네가 떠들썩 하리만큼 확진자들이 나오고
학교 앞 상권이라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던 해당상권이 학교에서 쏟아지는 확진자에 등교하는 아이들 마저
출근하는 선생님들 마저 잃게 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오히려 좋아'라는 미친 긍정요법으로 하나 둘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1. 코로나 19로 거리의 사람들이 발길이 줄었고, 외출을 삼가는 추세이며, 배달소비에 비중이 늘었다는 것.
2.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와 집 공간을 가꾼다거나 집과 관련된 일상 라이프를 담은 브이로그들이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
3. 결혼식 수용 인원이 줄어들고 식사가 안 되어 답례품을 찾는 수요가 많아졌다는 것.
당시만 해도 울산에 쿠키 전문점이 없었으며 수제 쿠키나 르뱅 쿠키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점을 역으로 이용해 [쿠키 전문점] [수제 쿠키 전문점]이라는 타이틀로 홍보를 철저하게 했다. 그리고 조금의 이목을 끌기 위해 내가 그간 살아오며 쌓아둔 내 경력 혹은 경험이 되는 것들을 활용했다. 카페를 준비하며 두 권의 책을 냈었는데 마침 카페 홍보에 적절하지 않을까 싶어 [글 쓰는 작가가 운영하는 수제쿠키 전문점]이라고 계속해서 어필을 했다. 배달의 민족과 더불어 코로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워크인으로 소비자분들이 매장을 찾게 구조를 생성해 두는 것에 성공했다.
또 집에서 취미를 즐기거나 유튜브 랜선 화상 줌 등이 일상화된 시기를 타 인하트쿠키 창업 과정과 코로나 시기를 극복해 나가는 카페의 현실모습 등을 카페 브이로그로 업로드해 전국적으로 쿠키 택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매장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요소. 바로 답례품.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이 취소 또는 연기가 되면서도 강행을 하던 식들은 뷔페나 식사문화 대신 답례품에 포커스가 맞춰지게 되었고, 그만큼 퀄리티가 높고 고급진 무언가를 찾고 있음을 인지한 이후로 인하트 쿠키 답례품을 웨딩 답례품에 적절하게 포장재질과 방식 그리고 구성 등 최선을 다해 연구해 준비를 마친 후 강력하게 홍보했다. 답례품 전문, 답례품 전문점이라는 타이틀을 늘 인하트 옆에 붙였을 만큼이었다. 철저하게 준비 후, 모든 매체를 활용해 홍보했고, 만족스러운 후기들과 고급지고 높은 퀄리티의 사진들이 많이 올라오다 보니 단기간 내에 하나 둘 곳곳에서 답례품 전문 쿠키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묵묵히 발전해야 할 요소와 더 피드백받아 움직여야 할 리뷰들 플러스 그럼에도 인하트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투자했다.
첫 창업에 코로나 그리고 한여름의 장마, 넉넉지 않은 자금과 맨띵에 헤딩하듯 달려든 환경은
어쩌면 나를 정말 바닥 밑으로 추락까지 하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살아날 방법은 있다고, 신께서는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의 시련만 주신다는 어디선가 들은 그 말들에 기대며
그렇게 치열하게 뜨거웠던 그 해 여름을 무사히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