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봉협상과 바르셀로나, 핀란드로 이민을?
오늘도 경유중 - 퇴사와 이직 사이 3
#3. 연봉협상과 바르셀로나, 핀란드로 이민을?
뉴욕에서 돌아와 한동안 프리랜서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이런저런 일을 하던 난 한 출판사에서 홍보일을 하게 됐다. 규모가 작았지만 매달 출간되는 책들의 홍보기획을 담당하며 4년 가까이를 보냈다. 그해 겨울 연봉협상에서 회사의 제안에 마음이 닿지 않았던 난 그렇게 4번째 회사를 떠났다.
사실 마지막 해 가을부터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사장과 실장은 이를 썩 내켜하지 않았다. 1주일에 3일 그중에 이틀은 학교 수업 때문에 30분 일찍 퇴근해야 했고 회사는 선뜻 학업을 응원하며 퇴근을 배려했다. 물론 남은 3일은 무조건 2-3시간 야근을 해야 했는데, 어차피 할 일은 많았고 고용자의 입장과 다른 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1학기 내내 나의 학업을 불편해하는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연봉 협상의 시기가 다가오자 그 불편함은 더욱 커졌다. 결국 난 늘어나는 업무와 보충되지 않는 지원인력, 자리만 차지하는 상사와 어떻게든 깎으려는 연봉 상승률 등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학기도 끝나고 업무도 끝이난 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4층의 어느 방에서 한 달을 살았다. 낮에는 바르셀로나 골목골목을 다녔고, 크루아상과 함께 카페콘레체(카페라떼)를 마시며 행복했다. 피카소 박물관에서 그의 초기작 스케치를 보며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고, 해변가 클럽들을 다니며 다시는 마주하지 못할 젊음에 즐거웠다.
그때그때 외로움과 현재의 불안함, 하우스 쉐어메이트의 무례함으로 모든 날이 행복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기에 모든 순간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빛나는 태양과 반짝이는 지중해, 해변에서의 모스카토 한 병(한 잔이 아님), 그리고 가우디 성당과 무용학원, 호프만 베이커리 만으로도 나의 바르셀로나는 너무도 사랑스럽다.
한국으로 돌아와서의 스토리는 도무지 글로 담을 수 없는 난장의 연속이었다. 차마 이력서 경력으로도 쓸 수 없는 업무 스토리와 상처들, 국정농단의 회오리 속에서 나비효과처럼 인생 최고의 늪에 빠질 뻔했던 일, 그 와중에 먹고살기 위해 했던 프로젝트들, 랜섬웨어로 컴퓨터 파일을 다 날렸지만 겨우 건진 대학원 논문과 졸업. 내 인생에서 똑 떼어 화형식을 하고 싶은 날들이다.
이후 지인의 추천으로 다시 홍보일을 했다. 그나마 해온 것이 홍보이고 잘하는 것도 홍보이고 어차피 할 수 있는 것도 홍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내가 홍보를 얼마나 더 오랫동안 할지도 모르겠는데, 차라리 기간을 정해 모든 걸 쏟아붓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년 계약직을 마치고 난 다시 핀란드 헬싱키로 떠났다.
언젠가 이민을 간다면 핀란드로 가고 싶었다. 아주 진지하게 이민의 방법을 알아볼 정도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월 말에 떠나 5월이 되기 직전까지 머물면서 난 깨달았다. 아, 이곳은 아니구나. 너무 추웠고 심심했다. 미련이 남지 않을 좋은 경험이었던 것으로.
이렇게 나의 첫 번째 브런치 글을 마무리한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지금 나의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0여 개의 글을 준비단계로 써보기로 했다. 일로는 그 많은 원고를 쓰고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정작 내 이야기, 내 글은 못쓸 것 같았다. 꾸준히 10여 편을 쓰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했는데, 그래도 오래 걸리지 않고 끝냈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삶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직은 퇴사와 이직 사이에 있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길을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