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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Oct 25. 2019

이제사 적성 찾기, 왜 이러는 걸까요.

이제사 적성 찾기, 왜 이러는 걸까요.


명확한 꿈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린 시절 무용을 하고 싶어했는데(내 최애 동화책이 안나 파블로바 전기를 다룬 <꿈꾸는 발레리나>였다) 난 나름 내성적이어서 학창 시절 남 앞에 나서서 춤은커녕 율동 한 번 보인 적 없고, 중고등학교 시절 무용선생이 전공을 추천했는데 마음으로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상 말도 못 꺼냈다. 진짜 간절했다면 어떻게든 시도해봤지 않았을까 싶으나 그 시절 나는 그냥 그랬다.
나중에 어찌어찌 동호회에 가입해 무용 수업을 들으면서 매일 밤샘 연습도 해보고 놀이동산 야외무대에도 오르고 극장에서 공연도 하고 나니 '다 이루었다' 싶으면서 마음속의 한이 풀렸달까. 게다 무용을 전공하지 않게 도와준(;) 엄마 아빠께 감사함을 전했더랬다. 그냥 취미가 좋은 거지...


아빠는 책을 많이 사주셨다. 퇴근길에도 동네 어귀에 있는 책방으로 나와 오빠를 불러내 책 한 권씩 고르게 했는데, 그 시절 독서가 꽤 영향을 미쳐서 학창 시절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고 책장을 가득 채우는 종이책들이 좋았다.(지금도 전자책보단 종이책을 선호한다.)

칭찬을 받고 싶어 공부도 웬만큼 하고 자기 처신도 알아서 했던 난 사실 공부보다는 뭔가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있었고 무용 학원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멘토도 없었다. 우울하고 지루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인생 절체절명의 운명을 가르는 수능을 대박 망치면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2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좋아하는 것은 책이었고 그런 책이나마 원 없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예창작과 국어국문을 전공했다. 그리고 연극과 뮤지컬 공연을 보며 언젠가 희곡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다.
하지만 문예지에 등단하고 책을 쓰고 글로 먹고사는 인생은 생각도 안 해보았다. 그것은 그냥 남의 인생 같았다. 10대 시절 내내 장래희망에 아나운서를 적었었는데, 언젠가는 오프라 윈프리처럼 관객,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지 못한 것이 아무래도 한이 될 듯하여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으나 더 늦기 전에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다시 말해 취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밀려왔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대학원은 잠시 미뤄두고 학부시절 pr아카데미를 다녔던 경험과 공연에 대한 애정으로 대학로 공연기획사에서 공연기획과 홍보를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10년이 넘게 연극과 음악회, 뮤지컬, 전시, 출판, 도서, 시민문화, 문화정책과 국가사업 등 문화콘텐츠와 관련한 홍보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함은 물론 다양한 이슈를 홍보 콘텐츠로 개발, 제작하는 일을 해왔다. 중간중간 이 길이 내 길인지 고민했던 시간도 많았고 퇴사와 학업, 이직이 반복되었다. 홍보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하면서도 난 결국 언론대학원에서 pr을 전공하며 신방과를 진학하지 못한 학부의 아쉬움을 달랬으나....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 5학기 동안 수천만 원을 교육계에 기부한 후원자였으며, 결국 지금은 고학력 백수이니 결론은.. 대학원을 고만하는 나와 비슷한 상황의 이들에게 신중히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쨌든 십수 년을 해온 그 일이 진정 내 길인지 다시 고민을 하고 있다.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고 이제 한 가지 일만을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도 하고, 일찍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이른 은퇴를 하는 파이어(파이낸셜 인디펜던스+리타이어 얼리)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는데... 지금까지 해온 일이 그냥 내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데 까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찾아 변화를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보아야 할 것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20대에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것을 이뤄내며 자신감이 넘칠 것 같고, 30대는 명확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이룬 것도 있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삶을 살 것 같고, 40대는 안정적인 삶의 궤도에 올라 일도 사랑도(혹은 가정도) 멋지게 이뤘을 줄 알았는데 19살부터 꼬인 인생은 지금껏 제대로 풀리지 않고 뭐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이 계속 불안정하고 헛된 허상만 같다. 하지만 이 인생이 망했다거나 최악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의 삶도 정답은 없고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니까. 반팔순을 앞둔 세상의 모든 이들의 삶이 다 다르듯, 다 각자의 삶에서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안정될 때도 불안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왜 인생의 반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적성을 못 찾았는지가 의문이긴 한데.... 인생 50, 60에도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도 많으니까, 난 아주 늦은 것은 아니라고 위로해본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일을 하기 싫다'라고 말하지 말라, '무위도식할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된 상태에서 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을 원한다'라고 말하라. 아이고 이렇게 내 마음을 읽는 문장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선 그 '경제적인 여유'부터 마련해놔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게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글을 쓰고 싶은지, 춤을 추고 싶은지, 옷이나 가구를 직접 만들고 싶은지- 그것이 확고히 정리된다면 내가 어떤 것에 도전해야 할지도 조금은 구체화되지 않을까.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버는 것까지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럼 지금껏 해온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것 일까. 또다시 고민의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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