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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Nov 19. 2019

남 탓 좀 하고 살겠습니다.

직장인 언니의 분노 조절법

남 탓 좀 하고 살겠습니다.
- 직장인 언니의 분노 조절법

일주일이 매번 월요일 아침마냥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것은 한 번도 쉬이 예측하지 못하는 일기예보 같은 기상이변 덩어리인 사람들의 행동거지도 한몫을 한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나=일’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욕을 먹으면 하루 종일 우울했다. 그 일이 전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작용 때문에 일어난 것일지라도 눈가가 뜨거워지면 자리에서 벗어나 잠시 구석진 곳에서 눈물도 뚝뚝, 콧물도 훌쩍였더랬다. 아니 내가 어쨌다고, 지들도 나 같은 딸이 있고 가족이 있을 텐데(없더라도 말이지… 나도 우리 집 귀한 딸이라고!) 인정머리 없이 저세상 말본새를 내뱉은 이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저주를 내렸더랬다.

사실 홍보 일을 하다 보면 뭐 그렇게 미안해야 할 일이 많고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할 것도 많고, 상대의 기분과 상황을 배려하는 것이 내 기분보다 먼저여야 할 때도 잦다.(이런 자세로 시부모님을 대하면 난 효부 상을 받을게다. 물론 그전에 울 엄마 아빠한테나 착하게 굴자.)

하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빡침의 기운에도 이젠 ‘그래, 뭐 이런 일도 있는 거지’하게 되는 건 일과 나를 분리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일은 일이고 나는 나고, 저 이가 열 받을 수도 있고 그건 내가 아니라 상황 때문인 것이고, 나 역시 일이 잘 풀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면 되고…. 이렇게 생각하는 단계에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껏 직업의식 투철하게 일과 나를 분리해 살아온 내게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광화문 사거리 건널목을 건너다 무례하게 날 밀치고 가는 사람들의 등에 대고 나지막하게 욕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만나게 됐다. 내가 길에서 욕을 했다고? 스스로에게 놀라면서도 한 편으로 무언가 가슴속 응어리가 내려가는 시원함을 맛보았던 나는 ‘아, 이래서 사람들이 욕을 하는 건가?’ 깨달을 정도였다.
  
사실 그동안 난 내 자신을 홀대하고 내 감정을 외면해 왔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그냥 내가 먼저 사과하고 말지 싶었던 상황들 속에서 내 안의 나는 그야말로 화를 눌러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분노를 눌러 담고 양해와 사죄와 조아림을 반복할 지라도 내게는 분노를 풀 수 있는 방법 하나는 줘도 되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다. 싸움을 하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벌어진 일에 대해서 네 탓이네 확인 사살하며 비난의 화살을 모으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안의 화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문제 해결을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원인 제공에 대해서는, 아니 나라가 어려울 땐 나라님도 욕한다는데, 남 탓 좀 하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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