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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Nov 26. 2019

오늘도 경유중 - 퇴사와 이직 사이 2

#2. 팔자 좋은 뉴욕 생활의 그늘

오늘도 경유중 - 퇴사와 이직 사이 2
#2. 팔자 좋은 뉴욕 생활의 그늘

어쩌다 보니 난 뉴욕에 와 있었다. 뉴욕행은 갑작스러웠다. 런던에 가서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무산됐고 난 모 기관의 홍보기획 일을 시작했다. 육아휴직 대체직으로 임기제 계약직이었는데, 이것이 내 생애 첫 계약직 경험이었다.(정규직과 계약직의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풀기로~)  나의 다음 목적지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바뀌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런던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뉴욕으로 가겠다는 투정과도 같은 심보가 작용했고, 두 번째 이유는 춤이었다.

20대 초반부터 동경한 뉴욕의 댄스 아카데미는 그냥 다이어리 속에 적힌 꿈이었는데, 이왕 뉴욕에 간다면 영어학원이 아닌 댄스 학원을 다니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 계약직 업무가 끝나면 뉴욕에 가리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기관의 계약직 채용 규정이 6개월마다 쪼개 계약을 연장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이 기회를 잘 포착해 뉴욕행 비행기를 예매하고 서블렛을 구했고, 그다음 해 자연스럽게 계약 만료와 동시에 뉴욕으로 떠났다.

3번의 직장생활, 4년 2개월의 경력, 어학연수 그리고 30세 미혼. 이 애매한 상황에서 프로페셔널한 미래도 아닌 그저 취미일 뿐인 춤을 추겠다며 3개월이나 뉴욕에 있던 내가 지금 생각해도 쉬이 이해되진 않는다. 당시 하루는 너무나 신나고 하루는 자괴감에 빠지고의 반복이었는데, 1달 정도 지나자 딩가딩가 돈만 쓰며 놀고 있는 나와 이 순간에도 열심히 경력을 쌓으며 일하는 이들과 비교하게 됐다. 점점 뒤처지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걱정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볼 정도로 압박감이 심해졌다.

그러다 이내 마음의 평화를 찾았는데 그 계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했었다. 내게 준 이 시간은 아마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테고 그렇다면 열심히 살(놀)아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시간을 흘렀고 어차피 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었으니까. 타임스퀘어를 지나 학원에 갈 때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이들과 함께 춤을 출 때마다, 뉴욕에서 가장 핫하다는 공연을 찾고 힙한 장소를 가고 타임아웃에 나오는 맛집에 갈 때마다 내게 고맙다고 되뇌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내 생애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됐다.

물론 내가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뉴욕에서의 3개월을 선택할지는 자신이 없다. 나름 대가족의 구조에서 살아온 내게 장기여행은 독립된 자유로운 생활이었기에 너무도 특별했고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내 마음속 짐이 컸고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퇴직과 이직 사이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을 옥죄는 스스로의 마음인 것 같다. 생활고라든지 인간관계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미래를 믿지 못하는, 나의 선택을 불신하는 자신이 가장 큰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에 감사하기로 했다. 뉴욕의 어느 공원 벤치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오늘'을 보낼 수 있게 한 나 자신에게, 나의 선택에 감사했다. 그러한 경험을 가질 수 있게 내 선택을 응원하고 믿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마웠다.(물론 부모님 속은 끙끙이었겠지만...) 훨씬 자랑스럽고 멋진 자리에서 커리어를 쌓고 돈을 벌고 명예와 경제력과 사랑을 가진 사람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다음 편,
은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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