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세에 유치원 학부형이 되었다.

by 민정애

오전 8시.

‘엄마, 이제 일어나세요. 유치원 가야지.’

엄마는 힘겹게 눈꺼풀을 올려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보며 노구를 뒤척인다.

94세의 우리 엄마,

요즘 엄마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닌다.

주간보호센터는 인지 장애가 시작된 노인들을 주간에 돌봐주는 곳이다. ‘노치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엄마는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얼마 전까지도 뜨개질도 하고 색칠공부도 좋아했는데 이제 모두 기억에서 사라졌단다. 집에 있는 시간에는 계속 누워만 있으려 한다. 그래서 잘 짜인 커리큘럼에 의해 전문가들이 돌봐주는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기로 했다.


요즘 나의 일은 등원 시간에 맞추어 엄마 깨워 목욕시켜 기저귀 갈아 채우고 엉덩이 한 번 두르려 주고 옷 입히고 아침 챙겨 드리면 등원 준비 끝. 꼭 자식 유치원 보내는 심정이다.

‘엄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재미있게 놀다 오세요. 운동 시간에 앉아 있지만 말고 운동도 잘 따라 하고. 앉아만 있다가 다리에 힘 빠지면 걷지도 못하게 돼요.’

엄마에게 매번 이렇게 당부를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정말 하루하루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까 이해도 간다.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기억은 점점 아득해지고 종종 대소변 실수까지 하는 자신을 생각하면 기막힐 노릇 아니겠는가.


오늘이 입학한 지 일주일째다. 실내화, 기저귀 등 준비물을 보내 달라는 연락을 받고 핑계 김에 들러보기로 한다. 마트에 들러 눈에 띄는 예쁜 실내화, 기저귀 등 준비물을 산다. 아이들 유치원 보낼 때 학부형 참관수업 하러 가던 때가 생각나며 준비물을 들고 센터에 들어선다. 그런데 유치원의 귀여운 어린아이들이 아니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며 서글픔이 밀려온다.


원장님의 말씀이 엄마가 잘 적응한다며 프로그램을 잘 따라 하면 인지 장애도 늦출 수 있단다. 실내 환경도 깨끗하고 요양사들도 친절하다. 다시 한번 원장님께 '엄마를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하고 집에 계신 것보다 낫겠지 생각하며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생의 지루함을 덜 느끼기를 기원하며 센터를 나선다. 코끝이 찡해오며 울컥 눈물이 난다. 70이 된 나도 엄마를 모셔보기 전까지는 늙음, 죽음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늙음, 죽음을 좀 더 편하게, 좀 더 아름답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늙음이나 죽음은 편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다는 것이 요즘 나의 생각이다.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리라 믿는다.


요즘 나는 엄마를 모시며 ‘사랑’이란 단어를 많이 떠 올린다. 내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인지장애가 있는 엄마를 모시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자식을 키울 때 똥을 싼 기저귀도 사랑이 있었기에 더러운지 모르고 주물러 빨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이 실수하면 견디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보내려 한다. 물론 나도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지면 엄마를 요양원으로 보낼 것이다. 그러나 모시는 날까지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란 말씀으로 위로받으며 엄마를 마음 편하게 모시려 한다.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과 같이 한다면 견딜만하지 않을까, 훗날 이 시간은 나의 행복했던 시간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매일 저녁 엄마의 잠자리에 찜질팩 데워다 드리고, 기저귀 확인한 다음 엄마 얼굴 한 번 쓰다듬으며

'사랑해 엄마, 잘 주무세요.'라고 굿 나잇 인사를 드리면

'고맙다, 고마워'라고 화답해 주신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한다. 나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고마운 마음보다 원망이 많았음을 시인한다.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마음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1930년에 태어나 한국 전쟁을 겪으며 우리 6남매 키워내시느라 한 고생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의 기억이 없다고, 나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시치미 떼고 원망하며 살았다. 이 기회에 그동안 엄마에게 빚진 마음 다 갚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나의 부족한 마음을 깨달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든 순간이 감사하다.

모든 부모는 주어진 환경에서 자식에게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에게 항상 죄인일 수밖에 없는 이 모순된 생각은 무엇인가. 왜 모든 걸 다 내주고도 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가. '내가 얼른 죽어야 네가 편할 텐데'이 말을 습관처럼 하는 엄마에게 나이 들면 자연히 찾아오는 늙음, 병마에 대해 자식에게 너무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엄마를 10여 년 동안 군말 없이 모셔온 동생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항상 우애로이 관심 가져주는 형제자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끝으로 생을 다한 노인들의 마지막 교실인 주간보호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요양보호사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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