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인 우리 엄마,
코로나 발생 전까지만 해도 인지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연세에 비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서 자식들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 동안 친구들도 못 만나고 노인정에도 못 나가서 그런지 엄마의 인지 능력이 많이 떨어졌다. 보건소에 가서 치매 검사받고 병원에서 치매 판정도 받았다. 연세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지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엄마의 기억을 붙잡을 수 있게 해 드릴까 고민한다. 엄마는 젊었을 때 뜨개질을 잘했다. 겨울이면 우리 자매의 스웨터는 물론 한복까지도 털실로 짜서 입을 정도였다. 우리 6남매 행여 추울까 겨울이면 밤새워 뜨개질을 했다. 10여 년 전 겨울까지도 나에게 하얀 털실로 예쁜 꽃잎 모양의 무늬까지 넣어 모자를 떠 주었다. 생각해보니 그 모자가 엄마의 마지막 작품인 것 같다.
‘그래 뜨개질을 하면 어떨까? 손의 움직임이 뇌에도 좋다고 하니 기억력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엄마에게 색색의 털실을 사 드렸다. 엄마는 반가워하며 어떻게 털실 사 올 생각을 했냐며 좋아했다. 자신 있게 코를 잡고 뜨개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무늬 넣는 기억이 안 난다며 당황한다. 무늬가 필요 없으니 그냥 뜨라고 해도 계속 풀었다 떴다를 반복한다.
‘이 번에는 될 거야’ 하며 당신이 그 뜨개질 방식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러 번 떴다 풀었다를 반복했지만 옛날에 떴던 그 무늬는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전혀 다른 무늬로 완성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엄마의 뜨개질이 모자 네 개를 완성했다. 네 개의 모자가 모두 모양이 다른, 그러니까 엄마의 의도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눈 감고도 넣을 수 있는 무늬를 못 만드는 것에 실망했는지 그만 뜨겠다고 선언한다.
‘엄마,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모자니까 계속 뜨세요.’라는 나의 부탁에
‘시장에 가면 이쁜 모자가 얼마나 많은데 이까짓 것 누가 좋아한다고, 이제 뜨기 싫다.’라고 하신다.
‘아니야 엄마, 지난번에 엄마가 두 번째로 뜬 거 내 친구에게 줬잖아 그 친구가 너무 예쁘다고 좋아했어. 그리고 세 번째 뜬 거 올케한테 줬잖아 올케도 좋다고 가져갔잖아. 계속 뜨세요, 아직 엄마 모자 기다리는 사람 많아.’
엄마는 다시 뜨개질을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며칠 전부터 시작한 다섯 번째의 모자가 전혀 진도가 안 나간다. 어제저녁에는 분명히 내일이면 완성될 것 같았는데 이튼 날 아침에 보면 풀어버리고 다시 시작한다. 내가 왜 풀었느냐 물으면 안 풀었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그러더니 요 며칠은 뜨개질을 놓고 계속 누워만 계신다. 이제 또 무엇으로 엄마의 무료함을 달래 드릴까 생각하다 엄마가 노래를 좋아했다는 생각이 났다. 스마트폰 작동도 못하니 라디오를 사드리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에 ‘라디오’를 검색하니 ‘효도라디오’라는 단어가 팝업창에 뜬다. 호기심에 자세히 검색해 본다. 산책을 하다 보면 가끔 어르신들이 뽕짝이 크게 울려 퍼지는 조그만 라디오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이름이 바로 ‘효도라디오’인 것이다. 설명서를 보니 라디오 기능에 노래 여러 곡이 계속 나올 수 있는 음원칩이 포함되어 있어 원하는 시간만큼 계속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엄마의 방에서는 하루 종일 뽕짝이 울려 퍼진다. 덕분에 나도 그동안 몰랐던 뽕짝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엄마 방 문을 여는 순간 뽕짝의 리듬에 내 몸이 저절로 반응을 한다. 그러면 엄마는 내가 흔들어 대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고 계속하라며 크게 웃는다. 나는 엄마를 위해 과장된 몸짓을 하며 재롱잔치를 한다.
뽕짝은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일컫는 말이다. 쿵짜작 쿵짝으로 정형화된 리듬이 구성지고 애절하다. 그뿐인가, 비트를 쪼개는 편곡을 하면 신나는 리듬이 되어 누구나 그 리듬에 맞추어 몸이 저절로 반응하며 막춤을 추게 된다. 또 가사는 어떤가, ‘인생은 어차피 네 박자 쿵작이라고,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겪으며 한 구절 한고비 넘는 것’ 아니던가.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란 제목의 노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 엄마 세대 여성의 아픔이 고스란히 표현된 노랫말을 들으며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낸 엄마가 존경스러워진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가사의 당당함.
‘어느 세월에 너와 내가 만나 점 하나를 찍을까 ‘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우기는 단순함은 또 어떤가, 이 직선적이고 솔직한 가사는 문학적 표현을 찾아 골머리를 앓는 나에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솔직해지라고 가르쳐준다. 우리 인생의 궁극의 목적은 예술이라고 한다. 그 예술은 감동과 공감일 것이다. 유행가를 들으며 공감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유행가가 유치하다고 클래식을 찾아 듣고 뜻도 제대로 모르는 팝송을 노래방에서 자랑스럽게 부르며 고상한 척 내숭을 떨었던 때가 있다. 이 얼마나 덜 성숙되고 가식적인 모습인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노래방에서는 뽕짝이 최고다. 어차피 사랑은 유치한 것 아니던가. 뽕짝을 불러야 같이 간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고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
엄마의 방에서는 지금 서주경의 ‘당돌한 여자’가 흘러나온다.
'이런 나 당돌한가요
술 한잔 사주실래요
야이 야이 야이 야이 날 봐요
우리 마음 속이지는 말아요 '
할 말 다 못하고 그저 참고 인내하며 살아 낸 우리 엄마가 이 노래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어쨌든 엄마는 뽕짝 메들리를 들으며 뜨개질을 다시 시작했다. 엄마방의 ‘효도 라디오’는 이름값을 훌륭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