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침식사를 하지 않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왜, 엄마 어디 아파?’
‘아니.’
‘그럼 왜 밥을 안 먹어?’
‘안 먹으면 죽겠지. 나 정말 죽고 싶다. 너도 나 죽었으면 좋겠지?’
‘그런 말이 어딨어, 빨리 일어나 식사해요.’
억지로 일으켜 밥을 떠먹이려 내가 수저를 드니 당신이 먹겠다며 수저를 잡으신다. 그러나 평소의 반 정도 드시고 수저를 놓는다.
요 며칠 몇 번의 대변 실수가 있었다. 기저귀에 대변이 나와 있는 것도 인지를 못했다. 아마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아직 식욕은 잃지 않으셔서 잘 드셨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식사를 거부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니 울컥 눈물이 난다.
기저귀를 갈아드리며 괜찮다고 엄마를 위로했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엄마의 인지장애 때문에 내일이면 이 사실도 잊어버린 다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가 나하고 계신 게 다행이란 생각, 만약 친정 엄마가 아니고 평소에 잘하지도 않았던 시어머니라면 과연 아무 불평 없이 시어머니의 기저귀 관리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니 올케들한테 어머니 모셔가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나도 엄마와 같이 살아보기 전에는 늙음에 대한 사유를 막연히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요양원으로 가는 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순서로 생각했으니까. 나 역시 나이 들면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요양원으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은 나는 요양원으로 가겠지만 엄마는 보내기 싫다. 인지장애가 시작되기 전이라면 자기의 상황 판단을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낯선 환경에 뚝 떨어진다면 그 소외감과 당황스러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제 늙음, 죽음의 대한 사유를 깊이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고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다, 누군들 오래 살아 기저귀 차고 자식 앞에 누워있고 싶겠는가?
나는 한 달 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신청했는데 오늘 등록증이 우편으로 전달되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죽음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아직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맞이하기 이전에 삶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매우 큰 불행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