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만나고 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우리 집에 계시던 엄마를 4개월 전 요양원에 잠깐 (한 달) 모셨다. 내가 외국에 갈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엄마의 상태는 치매 판정은 받았지만 심하지 않아서 나하고는 의사소통이 되었다. 자주 대 소변 실수는 하셨지만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시며 잘 지내셨다. 물론 식사도 잘하시고 스스로 보행도 잘하셨다. 한 달 후 내가 외국에서 돌아와 다시 집으로 모셔오려는 순간 갑자기 열이 나서 119로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요로 감염이었다. 요로 감염이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 몰랐다. 조금만 지체했으면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 하루 종일 기저귀를 차고 있기 때문에 요로감염에 취약하다는 의사의 설명이다.
15일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완치 판정받고 퇴원, 이틀 만에 재발, 다시 15일 입원, 다시 퇴원, 또 재발, 다시 입원, 퇴원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95세 노인이 한 달 이상 병상에 누워 있다 보니 다리에 근육이 빠져 걷지 못하게 되었다. 걷지 못하는 엄마를 70대인 나도 돌 볼 수가 없었다. 형제간 상의 해서 요양 병원으로 모셨다. 요양원에 모시려다 다시 응급 상황이 되면 빨리 처치할 수 있는 요양 병원으로 모신 것이다.
그런데 갈 때마다 엄마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진다.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엄마가 선망증상이 있어 할 수 없이 수면제를 쓴단다. 요양병원에 가기 전에는 없던 증상이다. 물론 연세도 있으신 데다 몸도 점점 쇠약해지니 없던 증상도 생기겠지만 요양보호사가 기저귀를 자주 갈아주었으면 요로감염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하며 애꿎은 요양원 원망도 해본다. 수면제 탓인지 멍한 표정으로 계시는 엄마를 뒤로 하고 짧은(20분) 면회시간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내 가슴에 뜨거운 이슬이 맺힌다.
이런 날은 김 사인의 '공부'라는 제목의 시가 나를 위로해 준다.
'공부' <김 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요양보호사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자식들도 못하는 일 맡아해 주시니 무어라 감사말씀 올려야 하는지요.
그래도 부탁하나 할게요. 물론 힘드시는 줄 압니다만 우리 엄마 기저귀 좀 자주 봐주세요. 그리고 우리 엄마 미운 짓 하더라도 너무 꾸짖지 마시고 자존감 지켜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