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조용하고 깨끗한 세상이 펼쳐졌다. 겨울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교회 울타리의 나무들에도 깊은 겨울이 스며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다시 한번 내가 생존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 기도를 올린다.
눈 내리는 평화로운 오후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듣기로 한다. 따뜻한 차 한잔 준비해 창가에 자리 잡는다. 창밖의 눈보라 속에 휘청거리는 슈베르트가 보인다. 추운 겨울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눈 속을 헤매지만 마음만은 연인과 달콤한 꿈을 꾸었던 성문 앞 우물가에 머문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았던 '보리수' 나무 밑.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 늙은 악사는 눈 위를 맨발로 다니며 손풍금을 연주하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의 작은 접시는 언제나 비어있다. "노인이여,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제 노래에 맞추어 손풍금을 연주해 주지 않겠습니까?"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 연가곡 24곡을 완성하고 일 년 후에 사망한다. 그의 나이 31. 한없는 연민이 인다. 갑자기 센티해진다. 최인호 작가의 소설 '겨울 나그네'도 있었지, 순수한 청년 민우와 불꽃같은 열정을 가슴에 품은 다혜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였지 아마. 또 에릭시걸의 러브스토리는 젊은 시절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안타깝게 했던가. 지금도 남자주인공 라이언 오닐이 눈 덮인 텅 빈 운동장의 벤치에 앉아있던 영화의 첫 장면이 눈에 선하다. 또 꼬리를 물고 나온다.'닥터 지바고' 유리역을 맡은 '오마샤리프의 깊은 눈빛은 20대의 내 마음을 얼마나 황홀하게 했던가.
피아노 앞에 앉는다.
악보집을 펼친다. 우선 닥터지바고에 흐르는 '라라의 테마'를 시작으로 이 계절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는다.
눈 오는 날이면 자동적으로 흥얼거려지는 곡, 연인들이 눈을 핑계로 헤어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사에 잘 나타낸 곡, 딘 마틴의 'Let it snow'. 를 시작으로 'White christmas' 'Jingle bell' 'We wish your merry christmas' '창밖을 보라' '겨울 아이' '눈장난' 'Love story'
아차, 눈 오는 날 빼놓을 수 없는 곡 'Tombe La Neige (눈이 내리네)'를 연주한다.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눈 오는 오후시간이 또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넘어간다. 이제 남편과 둘이 나눌 저녁 준비를 한다. 이런 날은 'Let it snow'와 버무린 '퐁듀'를 만들어야지. 너무 좋다. 이런 시간을 허락해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Let it snow 가사
아, 바깥 날씨가 무섭다
Oh, the weather outside is frightful
근데 불이 너무 좋아
But the fire is so delightful
그리고 우리는 갈 곳이 없으니까
And since we've no place to go
눈이 내리게 해 주세요!
Let it snow!
눈이 내리게 해 주세요!
Let it snow!
눈이 내리게 해 주세요!
Let it snow!
마침내 우리가 굿 나이트 키스를 할 때
When we finally kiss goodnight
내가 폭풍 속에 나가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겠는가?
How I'll hate going out in the storm
하지만 정말 날 꽉 잡아준다면
But if you really grab me tight
집에 가는 내내 따뜻할 거예요
All the way home I'll be warm
아, 불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어요
Oh, the fire is slowly dying
그리고 얘야, 우리는 아직 작별인사야
And, my dear, we're still goodbying
하지만 당신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 한
But as long as you'd love me so
눈이 오길, 눈이 오길, 눈이 오길!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