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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애 Apr 19. 2024

제4의 벽

박신양의 종이 팔레트

비 오는 화요일, 남편과 드라이브에 나선다. 

배우 박신양의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이다. 주말에는 관람객이 많을 것 같아 평일로 정했는데 비가 내린다. 벌써부터 예술의 향기가 봄비와 어우러져 내 마음속에 여유로움과 고요함을 선사한다. 이 여유로운 시간을 짝꿍과 공유할 수 있는 이 순간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창밖으로는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연둣빛 잎새들이 싱그럽다. 한 시간 여를 달려 평택에 있는 엠엠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아트센터의 외관에 '제4의 벽'이라고 쓰여있는 전시회의 주제가 나를 설레게 한다. 안내에 따라 3층으로 올라가 작가에 대한 다큐를 먼저 본다. 

 작가는 말한다

"연극에서 무대와 관객석을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제4의 벽'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제4의 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상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제4의 벽'이라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너무나 무궁무진하고 진귀한 것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사소하지만 분명한, 끈질기게 나를 붙잡는 그리움에 대해서 '제4의 벽'이라는 근거-경계를 인식하고, 거기에 서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연기할 때 나는 내가 느끼는 만큼만 표현했다. 올곧고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는 마음도 그렇다, 나의 진심만큼만 전달되리라는 심정으로 연기든 그림이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던져 넣었을 때 비로소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가 닿는다고 믿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 얼마나 나의 글에 정직했나, 내 삶에 얼마나 정성을 간주리고 살았는가, 또 진심이 아닌 페르소나를 얼마나 덧씌우고 살았나 반성해 보았다. 


2,3층에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면서 아래층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 그러니까 작가가 작업하는 것까지 보는 것을 한 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독특한 전시회였다. 작가는 전시기간 4개월여 동안 갤러리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계속한다고 한다. 작가의 몰입과 집념에 경의를 표하며 천천히 작품을 둘러본다.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그냥 내 방식대로 느끼려 한다. 

다행히 작품마다 큐알코드를 생성해 놓아 도슨트 없이도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당나귀를 많이 그렸는데 평생 짐을 짊어져야 하는 당나귀와 우리가 닮은 것 같아 뭉클했다. 


작가는 말한다.

'본질적으로는 예술가가 스스로 길을 찾아내고 거기에 수반되는 짐을 기꺼이 짊어져야 한다. 당나귀가 짐을 지는데 꾀를 부리지 않듯이.

마땅히 져야 할 짐을 지지 않으려고 뒷발질해 대며 우습게 몸부림치는 못된 당나귀가 가끔씩 내 모습이라 생각한다.'라고


작가의 작품들은 추상화처럼 형태가 선명하지 않은데 내 마음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느낌이 신기하다.


또 하나 특이했던 점은 종이팔레트였다. 

'언어가 가진 한계성'이라는 메모를 종이팔레트에 써 놓은 걸 보고 언어의 한계를 색깔로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종이팔레트를 전시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우리식 대로 작품을 해석하며 일상에서 잊고 있던 예술의 힘과 아름다움을 되새겼다.  

 그리고 그 순간을 통해 삶에 대한 감사함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그리워서 그리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얼굴을 그리다 정신 차려보니 한 5년쯤 지나 있었다. 그제야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았었다. 영화 촬영할 때는 영화의 시간이 흐르고, 그림을 그리면 그림의 시간이 흐른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 밤 그림을 그린다."


고대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물리적인 시간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한 개인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적인 시간 개념이다. 카이로스는 시간의 주인인 '나'를 향해서만 흐른다.

박신양 작가는 카이로스를 찾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구도자처럼 보였다.

전시회장을 나오며 예술가들의 고통과 집념으로 구현해 내는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감동이 없는 얼마나 삭막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니 새삼 예술가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전시장에서 흘러나왔던 엘튼존이 부른 라이언 킹의 OST 를 들으며 가사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It is where we are. 우리가 같이 있는 이곳에서 오늘밤 사랑을 느끼시나요?

우리 노부부의 오늘 하루도 우리들만의 카이로스로 남길 기원하며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


당나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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