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by 민정애

오래간만에 어려운 책을 읽었다.

아니 처음으로 물리학 책을 읽었다. 학교 다닐 때 수학 과학을 제일 싫어한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읽고 난 소감은 ‘나도 이런 책을 읽을 수 있구나’ 정도. 뿌듯함은 있지만 내용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을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나도, 물리학 책을, 그것도 내 돈으로 사서 읽었다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제목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저자 카를로 로렐리는 이탈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 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로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다.

양자이론, 중력이론, 루프 양자중력, 이라는 가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단어들, 또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엔트로피’라는 단어, 도대체 뭔 말인지.

나는 이 책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몇 번을 더 읽어볼 계획이다. 지금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아, 물리학도 딱딱한 학문만이 아니고 흥미롭기도 하구나.’였다. 저자는 물리학에 자기의 철학적 시선을 가미시켜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도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간은 흐르는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시간은 단지 물질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과의 관계, 즉 내가 공간 속 시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시간을 만들어 내는 것 이란다. 깊이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시간은 그대로 있는데 내가 6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그만큼 내가 변하고 새롭게 만들어졌다. 내가 산 시간만큼 나의 육체나 정신이 변한 것이지 시간은 그대로 있었다? 바로 내가 시간의 증거품인 것이란다.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물리학자의 새로운 개념이니 시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자기의 이론을 만들고 그것을 증명하려 평생을 보내다가 그나마 생존에 증명되면 행운이고 대부분 사후에 증명되는 예가 많다.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시간이 걸렸듯 말이다. 이 이론은 시간의 유일성은 상실된다.


‘공간 속의 모든 지점마다 다른 시간이 적용된다. 특별한 시계가 특별한 현상 속에서 측정한 시간을 물리학에서는 ’ 고유 시간 proper time, 이라고 부른다. 모든 시계에는 각자의 고유의 시간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도 고유 시간, 고유의 리듬이 있다.’


내가 공부하는 도덕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我生有我 我無無我(아생유아 아무무아) 내가 있으니 내가 있고, 내가 없으니 내가 없다, 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고유 시간에 적용시켜 보면 내가 있어야 나로 인해서 내 시간도 만들어지는 것이고 내가 없으면 우주의 많은 시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면 나만의 고유 시간은 나만 만들 수 있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 살아가는 것, 나만의 리듬 속에서 나만의 춤을 추기 위해 내 안의 나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 봐야겠다.


‘이제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서 시간의 본성과 관련해 우리가 하는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 실체인가? 하지만 이 세상은 실체로 이루어져있지 않고 서로 결합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지는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無形則有形 有形則無形 (무형즉유형 유형즉무형)이란 말씀이 생각난다. 형태가 없는즉 형태가 있고, 형태가 있은즉 형태가 없다. 이 말씀을 수없이 공부했으면서도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 실체인가?’라는 위의 글을 읽고 어려운 숙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나의 철학이 과학을 만나 합의를 찾게 되는 희열을 맛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은 보람이다.


과학의 가장 깊은 뿌리 중 하나인 현재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 치명적인 결정에 참여한 카르노의 시가 UN건물 입구에 있는 멋진 시를 썼다고 한다.

저자는 ’어쩌면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줄 아는 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고 썼다.


‘모든 아담의 후예는 한 몸을 형성하며

동일한 존재다.

시간이 고통으로 그 몸의 일부를

괴롭게 할 때

다른 부분들도 고통스러워한다.

그대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나도 인간이라 불릴 자격을 갖추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 위해

마음 그릇을 더 키워야겠다.

또 나만의 고유 시간을 충만한 날들로 채우기 위해

매 시간 나에게 찾아오는 사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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