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소중함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안경을 썼다. 선생님이 칠판에 숙제나 준비물을 적어주면 알림장 노트에 적어야 했는데 그 내용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맨 앞에 앉았더라면 잘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나름 키가 큰 편이라서 뒷줄에 앉았다. 동생들도 학교에 가면서 나와 비슷한 이유로 안경을 썼다. 가족 모두가 안경을 쓰다가 아빠와 동생들은 수술을 해서 안경을 안 쓴다. 정말 편해 보인다. 나는 수술의 두려움이 너무 커서 계속 안경을 쓴다. 주사, 수술, 병원은 단어만 들어도 무섭다.
안경을 24시간 쓴다. 잘 때도 쓰고 잔다. 어렸을 때는 책 보다가 자연스레 안경 쓰고 불 안 끄고 잠들기가 일쑤였다. 부모님이 몰래 안경을 빼놓으면 일어나자마자 안보이기 때문에 싫었다. 습관이 돼서 안경이 없으면 허전하고 쓰고 자야 꿈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렇게 쓰고 자다가 많이 부러졌는데 요즘은 소재가 좋고 튼튼해서 잘 망가지지 않는다. 그래도 막 쓰다 보면 틀어지기 때문에 가끔 안경점에 가서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지금은 아예 집에서 잘 때 쓰는 안경이 있다.
여동생이 자주 하는 말이 “언니는 안경 안 쓰면 예쁜 얼굴이야”다. 안경 쓰면 못난이가 된다. 어디 놀러 가거나 중요한 만남이 있을 때는 무조건 렌즈를 사용한다. 특히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는 반드시 렌즈를 착용한다.
지난주 월요일 출근 전 기관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었다. 최근에 담당자가 새로 바뀌었다고 해서 오래간만에 렌즈를 꼈다. 서류 준비는 완벽했지만 혹시나 트집 잡히면 이래저래 설명할 일이 많기 때문에 똑순이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욕심이었을까. 미팅을 순조롭게 마친 뒤에 일회용 렌즈를 버리고, 다시 안경 쓰고 회사로 갔다. 차 한잔 마시고 업무 보던 중에 갑자기 오른쪽 눈이 아팠다. 뭐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에 눈물 나고 앞이 뿌옇게 안보였다. 인공 눈물을 넣어도 괜찮지가 않아서 근처 안과에 전화했는데 오전에 대기 환자가 너무 많아서 와도 진료가 어렵다고 했다.
그 날따라 다들 출장, 휴가였다. 눈이 다 녹지 않아 길은 미끄러웠고 혼자 운전해서 가기엔 무리였다. 오후가 되니 통증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참을만했다. 결국 업무를 다 마치고 야간 진료가 가능한 안과에 갔다. 늦은 시간인데도 대기 인원이 많았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간단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눈에 상처가 났는데 그게 하필 눈동자 한가운데라서 안 보이는 거라고 했다. 안연고와 안약을 처방받았다. 며칠간 잠도 푹 자고 눈 건강을 위해 노력했다. 귀찮아서 안 쓰던 인공 눈물을 챙겨 넣어주고 틈틈이 눈 찜질, 눈 운동도 했다. 통증은 금방 가라앉았지만 시력이 바로 돌아오지 않아서 마음을 졸였다. 지금은 멀쩡하다.
올 겨울은 눈이 문제다. 눈이 너무 내리고, 내 눈은 안 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