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서 나는 혼자 달린다.

[런중일기]

by 달리는아이

러닝시기로 보면, 한겨울은 비시즌이다.
어떤 러너는 산으로 들어가고, 어떤 러너는 헬스장으로 들어간다.
시즌 내내 손실된 근육을 복구하기 위한 보충의 시간,
혹은 눈꽃 산행을 업힐 훈련 삼는 이들도 있다.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동네 러닝 코스에는 발자국조차 드물다.
한때는 나도 러닝 동호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웃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외향적인 성격임에도
굳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사람이 좋고, 떠드는 것도 좋고,
그들에게서 받는 긍정적인 에너지도 좋았다.
그런데 난
좋아하는 걸 너무 좋아하면, 조절이 안 된다.

무엇이든 다 함께 하고 싶고,
그만큼 기대하고,
그만큼 실망한다.
나는 “뭘 하든 적당히”라는 법을 잘 모른다.

분명한 전환점은
할머니의 낙상 사고였다.
모든 게 버거웠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그땐 오롯이 할머니에게 집중해야 했다.
평일엔 병원에서 간병하고,
주말엔 동생과 교대로 겨우 짬을 내
산으로, 달리기로 도망치듯 나갔다.

달리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동호회 사람들은 기다린다며 연락했지만
나는 답하지 못했다.
지구엔 할머니와 나,
단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살아냈다.

퇴원 후, 요양원으로 입소하신 할머니를 보내며
나는 그제야 조금씩 깨달았다.
내 에너지를 온전히 써야 할 곳은
더 이상 ‘사람들과의 재미’가 아니라
내 삶 자체라는 것을.

고개를 들고 내 방을 둘러보았다.
비싼 운동복, 장비들,
나도 모르게 남을 의식하며 산 흔적들.
텅 빈 통장.
제일 방치돼 있던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화가 났다.
왜 이렇게까지 나를 내팽개쳤을까?
그렇게 질투하고, 의식하고, 휘둘리고…
이 모든 감정은 나 자신을 외면한 대가였다.

그래서 지금 나는 혼자 달린다.
나만의 페이스로,
나만의 리듬으로.

야근 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밤에도
나를 살리는 건 단 하나,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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