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려 죽을 뻔했어!

1947년생 극우 아버지와 살아가기_사랑하는 아버지의 좌충우돌 극우 일상

by 막걸리와모둠전

깔려 죽을 뻔했어!

탄핵무효와 탄핵반대의 시위가 한창 시끄럽게 열리던 그 어느 날

아버지가 주말을 앞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나 광화문 갔다 올 거야! 속에 화가 치밀어서 안 되겠어! 이 나라는 망했어! 그리고 광화문에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모인데. 이제부터 싸우는 거야! 다 같이 죽는 거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라에 대한 거칠고 험한 말들을 내 앞에서 막 퍼부으셨다. 대체 나라가 아버지에게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정말 나라가 어찌 되려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좋은 사람들을 다 내쫓으려고 하는지 나도 가서 태극기 들고 보수 지지자들 옳은 이야기 듣다 올게! 정말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보면 속이 정말 답답하다! 이 빨갱이들!!"

“아버지 사람도 많고 거기 가서 괜히 다치면 어쩌려고... 나가지 마시고 집에서 TV 보시면서 뉴스로 소식 들으셔."


“뉴스도 다 거짓말이야! 조작이고! 나 알아서 갔다 올게”

“늦지 않게 오셔! 지하철 타다 보면 독감 옮을 수 있으니까 마스크 하시고!!”


쾅! 아버지는 내 말을 끝까지 들으셨는지 안 들으셨는지 알 수 없게 현관을 닫고 나가셨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뉴스에는 어김없이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시위가 이뤄졌고 곳곳에서 충돌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 삼엄한 경계를 더욱 각별히 주의해서 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 뉴스를 보고 있는 순간까지도 아버지는 별다른 연락이 없으셨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겠지 하며 애써 걱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주말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한두 시간쯤 흘렀을 때일까 보통은 어디에 계시든지 한 번은 나에게 전화를 하시던 아버지가

그때까지도 연락이 없으셔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먼저 전화를 걸어보았다.

한참 벨소리가 지나고 소리샘으로 연결한다는 안내 음성이 들리면서

내 기분이 조금은 어두워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더 전화를 걸었다. 뒤늦게 받으시는 아버지의 목소리.


"어" 도 아니고 "응"도 아닌 그 중간쯤의 발음을 내며 "으어!!!!" 하시며 전화를 받는 아버지의 귀찮다는 듯한 음성이 소리치듯 들려왔다.

"어디야?!! 대체 광화문 사람도 많을 텐데 왜 거기서 아직도 안 오셔?"


"야! 내가 보수의 한 목소리를 내려가 갔다가 깔려 죽을 뻔했어! 어휴... 인간들이 죄다 광화문으로 나왔어!

사람들한테 밀리다가 광화문에서 돌아온 지 한참 됐어. 부동산에서 놀고 있어!

으허허허 걱정하지 말아~~ 허허허 허"

부동산은 아버지의 애증의 놀이터다.

부동산에서는 나이도 명확하지 않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상대들보다 내가 더 어른이다라는 표현을 에둘러 표현하는 한 마디.

칠십 여덟 아홉 됐어요!라고 정해져 있는 나이를 대충 여러 나이로 답변하며 형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신다. 마치 나이가 어리면 굽신거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시는 걸까?

그리고 별일도 아닌 일이 극대노의 현장이 벌어지기도 하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의형제도 맺어지는 곳이다.


내가 두 번 다시 절대 저 부동산에 안 갈 거야! 하빠리 인생들만 모였어! 수준이 안 맞아하시다가도

결국 아버지 하루의 마무리는 부동산에서 모두 종료가 된다.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원대한 다짐을 하고 광화문으로 당차게 가신 아버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파에

깔려 죽을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고 부동산에서 부동산 친구분들과 나라를 바로 잡는 일의 마무리를 하셨다.

"사람 많은 광화문은 가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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