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생 극우 아버지와 살아가기_다섯 번째 에피소드
워킹맘으로 일상을 살아가다 보니 아이를 둘을 키우면서 잘 챙겨야지 하면서도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꽤나 자주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잘 챙겨주는 엄마들과 내 모습이 아이들의 눈에는 얼마나 비교가 될까?
일을 할 때 일에만 집중을 하는 타입이라 다른 것들을 멀티로 실시간 실행되지 못할 때가 자주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몇 번 강조하고 부탁한 일도 결국에는 백지처럼 잊어버릴 때가 부지기수이다.
하루는 어김없이 아이와 한 약속을 역시나 잊어버리고 놓치고 말았다.
그날은 큰 아이가 다른 날 보다 많이 실망을 하고 또, 다른 때와 다르게 풀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치우면서 아이에게 진심을 다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엄마가 이러한 이유로 자주 잊게 되는데 엄마도 엄마를 믿을 수 없으니 다음에 중요한 일은 계속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서라도 닦달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야, 엄마가 오늘은 정말 미안해"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아버지는 어김없이 또 한마디를 덧 붙이신다.
"자식 교육 한번 잘~ 시킨다. 부모가 돼서 어디 자식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냐? 예전에 나 젊을 때는
부모는 자식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
자식한테 무슨 사과를 해 그런 법은 없어. 부모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뭘 자꾸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있냐. 윗사람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거야. 너 얘들 교육하는 것 보면 참 한심하다."
"아니 사과를 하는데 자식이고 부모가 어딨어. 부모라고 해도 사과할 일이 있으면 미안하다고 해야지. 무슨 부모가 벼슬이고 자식은 사람도 아니야? 하... 진짜 아버지 또 엉뚱한 트집 잡으시네! 그만하셔!"
이런 대화를 아버지와 하고 나면 내 속 안의 감정이라는 그릇은 요동을 치며 금이 갈라지고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아버지는 이와 같은 가치관을 어떻게 만들고 습득하시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슷한 연배의 다른 어른들도 이런 생각에 똑같이 생각하실까?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가슴이 답답하고 공황이 느껴질 것 같은 대혼란이 머릿속 안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이해시키려 해도 단단한 무언가에 묶여있는 사람처럼 이해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저 답답하고 갑갑한 갈증만 불러일으켜 온다.
아버지는 동네에서도 유명한 주태백이이셨다.
*주태백이는 술주정뱅이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내 아버지가 주태백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조심스럽긴 하지만 정말 술을 평생 많이 드셨다.
40~50대 젊은 시기에는 일주일 7일 중 7일을 실제로 술을 드셨고, 한잔 드는 순간 블랙아웃이 될 때까지 드시는 좋지 않은 술버릇을 가지고 계셨다.
보통은 술을 마시며 필름이 끊기게 되면 잠에 들거나 그만 마시는 상황이 되는데 시간이 가고 술을 드시면 드실수록 힘은 더 세지고 절대 잠들지 않는 그야말로 술이 술을 마시는 형국에 이르셨다.
거기에 술버릇은 얼마나 고약하신지 집안 살림을 다시는 쓸 수 없게 만들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화를 내거나 자식들에게 난데없는 사랑고백을 하시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누군가와 끝없는 대화를 하시는 등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본 도라미와 같은 아버지가 기억 못 하는 새로운 자아가 나타나 버린다.
이러한 아버지의 술버릇을 온전히 감당한 돌아가신 나의 엄마가 가장 고생을 하시긴 했다. 살아계실 때 엄마는 아버지가 마신 모든 술을 합치면 한강물 보다 많을 것이라 하셨다.
엄마가 했던 그 말을 실제로 나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아버지는 정말 술을 많이 드셨다. 술을 드시고 길에 쓰러져 있는 상황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니 동네의 지구대 경찰 분들은
아버지를 한 번에 알아보시고 나에게 전화를 주시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버지의 알코올 라이프는 끝나지 않았다.
저녁 시간 내내 연락되지 않았던 아버지. 혹시...라는 생각이 들고 있을 때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 지구대 **경찰입니다. 따님, 저희 처음 통화한 거 아니죠. 아버지가 여기 또 길에서 주무시고 계시네요. 바로 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하... 언제까지 이러시려는 걸까..? 제발.. 나는 이 뒷감당이 너무 힘들었다.
"제가 아버지 집에 들러서 차를 갖고 가야 해서요. 최대한 빨리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 반복되는 상황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이런 뒷수습의 시간도 내가 그리워할 날도 있을까? 하는 수많은 생각을 하며 아버지가 계신 곳에 도착한 순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경찰 분들께 가볍게 목례를 하고
어떤 주의사항을 일러 주시는데 늘 들어왔던 이야기라 귀 담아 듣지 않고 네네~ 하고 인사를 드렸다.
인사불성이 되었고 옷도 다 더러워지고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인물과 대화를 하시는 중이신 아버지에게 내가 말을했다.
"얼른 일어나. 빨리 차에 타셔!"
"누구야? 너 뭔데? 엇?? 내 딸이네! 쏴랑하느은 내 딸! **아~! 내가 너를.... 너를... 이 세상에 너 하나밖에 없잖냐.. 너는 나 신경 쓰지 말고 너만 잘 살아. 너만 알아서 잘 살면 나는 돼...."
난데없는 사랑고백을 받으며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집에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방에 눕는 모습까지 보고 안심을 하고 아이들만 기다리고 있는 나의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 내려갔다.
다음 날 아침, 아무렇지 않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나를 맞이하시며
"어제 일찍 쉬었냐? "
"또 기억 안 나시지! 어제 아버지가 또...! 거기에서 술 드시고.... 그래갖고... 경찰이 또 전화가 와서..
내가 집에 모시고 온 거 진짜 기억 안 나??"
"휴.... 또 내가 그랬냐..... 미안하다... 내가 진짜 정말 술 끊는다. 미안하다.. 할 말이 없다."
아버지는 술 끊는다는 말씀을 아마 내 어머니와 결혼하시고 약 50년간은 매번 해오신 것 같다.
자식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큰소리치시더니
결국 나에게 술 한잔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시는 아버지.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자식에게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술로 인한 사과는 더더욱 안 하셔도 되니 제발 과음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