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는 속도와 엄마가 자라는 속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당연히 힘든 건 줄는 알았다. 이렇게 힘든 줄을 몰랐을 뿐! 그런데 나는 왜 꼭 아이를 낳아야 했을까? 사실 모르겠다. 이건 내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나의 선택이 정말 아이를 원해서였을까 의 질문에서 시작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시끄럽고 우는 소리는 정말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기에, 모두가 이렇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 생각했다. 게다가 나이도 점점 차고 있었고 어차피 나을 거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나아야 고생을 덜 할 것 같았다. 거기다 더 솔직하게 회사 생활에 있어서 이직을 하느냐 혹은 휴직하고 복직을 하느냐 하는 나의 커리어도 생각해야 했다. 이직보단 휴직을 택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코로나와 육아의 콜라보로 나는 영영 다시는 회사에 가지 못했다.
사실, 예전에 일하다 너무 스트레스받으면
"진짜 때려치우고 싶다. 당장 퇴사하고 싶어!!!"
라고 남편에게 말하면,
"회사 생활은 다 그렇지 뭐. 그리고, 요즘 세상에 어떻게 혼자 벌어먹고살아."
라는 말에 너무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빈말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잠깐이라도 쉬어!” 이런 말을 해주기 바랐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그만두라고 하면 정말 그만둘까 봐 겁이 났단다. 이랬던 남편이 코로나 상황에서 아이까지 있으니, 엄마가 아이를 보는 게 낫지 않겠냐라는 태도를 취했다. 정작 나는, 갑작스럽게 막상 5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둔다 생각하니 왠지 모를 섭섭함과 서운함이 몰려왔다. 직군을 옮기면서 나름대로 엄청 노력했는데, 그만두면 커리어상 너무 애매해서 재취업도 힘들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더 미련도 없을 먼 곳으로 이사까지 오게 되었다.
2021년 주변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로운 곳에서 말 못 하는 아이와 남편 이렇게 딱 셋만 남겨졌다. 코로나 상황으로 남편은 재택근무를 했다. 남편은 서재에서 매일 줌(zoom)으로 회의를 하고, 다른 방에서 아이는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소리 지르고, 울고 불고를 반복하니 급기야 회의를 멈추고 대체 무슨 일이냐며 뛰쳐나온 것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는 말을 못 하니까 안 그래도 답답한 데 엄마가 자기 맘을 몰라줘서 소리 지르고 울고 불고 난리 치고, 나는 나대로 답답하면서도 재택 하는 남편한테 방해될까 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나는 육아가 너무 안 맞는데 아이랑 하루종일 씨름을 하고 있으니 아이가 엄마랑 있어서 더 안정감 있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해가 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 말을 잘 못해서 답답해서 그런 거라 생각해 말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겠다 싶어
"엄마, 아빠는 할 줄 아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해볼까? 할. 머. 니 해봐~"
하면 아이는 한두 번 시도하다 짜증 내고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 나고 나는 나대로 생각했던 엄마표 놀이가 되지 않으니 그냥 아이랑 노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 나를 구원해 준 전화 한 통이 있었으니... 바로 어. 린. 이. 집!
원래는 영아반이 없어서 만 2세 반에 대기를 걸어뒀었는데, 만 1세 반을 만들면 보내겠냐는 전화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너무 망설여졌지만, 아이도 나도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이대로 지내는 것이 더 고역일 것 같아 보내겠다고 했다. 사실 만 1세 때는 코로나가 조금이라도 번지면 혹여나 아이가 옮을까 봐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날도 엄청 많았다. 그래도 일단 내가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조금 생기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에게도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하게 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이 예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또래보다 말은 좀 느려서 걱정했지만 어린이집 생활에 너무 잘 적응했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를 기점으로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도 너무 잘하니까 소소하게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봐야지 했다. 그런데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뭘 해야 할지 그 고민만 몇 년째.. 아이는 벌써 훌쩍 커서 유치원에 다니고 있지만 나는 성장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아버린 것인지 덜컥 겁이 난다.
토끼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쫓아가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나는 거북이처럼 아니 달팽이처럼 느리게 나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줏대 없이, 속절없이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세월만 지나갔다며 후회하는 나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 나날들이 나의 훗날에 버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