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착한아이콤플렉스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 착한 아이로 인정받고, 인기도 많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일부러 가서 말도 걸고 장난도 치며 그 친구랑 기어이 친해지곤 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런 성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었다. 모두와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에 안 들어도, 기분이 상해도,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참고 넘겼다. 괜히 부딪혔다가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되면 안 되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더 이상 착한 게 능사는 아니었다. 친절한 척, 위해주는 척하며, 뒤로는 본인의 이득을 채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좋은 마음으로 배려해 주면 만만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겉으로는 나를 좋아하는 척하더니,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필요도, 그럴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함부로 웃지 않기, 쓸데없는 친절 베풀지 않기, 쉽게 도움 주지 않기, 일단 거절하기, 희생하지 않기.
그렇게 차가운 어른이 되어 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선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유 없는 비난에도 허허실실 웃고 넘어가고, 부당한 업무를 떠맡아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급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저러면 안 될 텐데, 만만하게 보일 텐데, 걱정스러웠다. 조금 있으면 저 사람도 변하겠지.
하지만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선한 사람으로 남았다.
사회생활을 안 한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따금씩 일을 하면서 만났던 선한 사람들이, 미소와 함께 떠오른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여전히 좋은 사람이겠지?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을 때에는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 인연이 다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가장 강한 사람은 그 사람이었을 거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지켜냈으니까. 더러운 물속에서도 깨끗함을 잃지 않았으니까.
길에서 종종 불친절한 사람들을 만난다. 별것도 아닌 걸로 가게 종업원들에게 화를 내며 따지거나,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매사에 불만을 가지며 투덜거리거나,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어 차 안에서 시끄럽게 클락션을 울려대거나 칼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싶어 안쓰럽다. 삶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 마음에 여유가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겠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나도 누군가의 기억에는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아니면 나 역시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까?
다시금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먼 훗날, 누군가가 나를 떠올렸을 때, 기분 좋은 마음과 함께 몽글몽글 떠오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약간의 손해는 쿨하게 넘어가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좋아하고, 나보다 상대를 더 배려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가벼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요즘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 먼저 인사를 건네고, 건물에 들어갈 때에는 뒷사람이 안전하게 들어올 때까지 문을 꼭 잡아준다. 길을 묻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알려준다.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면, 뇌에서 긍정적인 호르몬이 분비되고, 본인이 의미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남을 위한 행동이지만, 결국은 나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나를 위한 행위인 셈이다.
친절하면 행복해진다니, 행복을 얻는 꽤나 가성비 좋은 방법이 아닌가.
동생에게 나의 결심을 비장하게 말해본다.
"나 이제부터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
"아, 언니는 좀 그럴 필요가 있긴 하지. "
하하. 오늘만 잠시 불친절해야겠다. 친절은 내일부터 베푸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