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행복이, 보통사람들은 쉽게 거머쥘 수 없는 대단한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 되기' 같은 것은 머나먼 목표였고 꿈이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과 차를 사면 행복해지겠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저 멀리 해외로 나가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날들을 보내면 분명 행복할 거야.
하지만 이런 것들을 언젠가 이룰 수 있기는 할까? 난 역시 행복한 사람이 되기는 글러먹었겠지.
한동안 에세이에 푹 빠져 하루종일 책을 읽곤 했다. 모든 에세이에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고. 지금 이곳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미래에도,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고.
그래,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면 되는 거구나. 왜 나는 행복을 멀리서만, 먼 훗날에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일상에서 작고 소소한 행복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커피를 마실 때, 내가 좋아하는 분식류랑 디저트류를 잔뜩 쌓아놓고 먹을 때, 이미 여러 번 봤지만 볼 때마다 좋은 영화를 다시 볼 때,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새소리가 들려올 때,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파랗게 개인 하늘을 볼 때, 한 번은 만져보고 싶은 폭신폭신, 몽실몽실한 흰 구름을 볼 때, 살랑살랑한 바람이 기분 좋게 몸을 훑고 지나갈 때,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실 때,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 사이사이로 짙어진 풀내음 향이 날 때, 길가에 예쁘게 피어난 알록달록한 꽃을 봤을 때.
나의 일상 곳곳에 작고 귀여운 행복들이 잔뜩 숨어 있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내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깔려있는 행복들을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바쁘게 지나쳐갔던 지난날의 내가 안쓰러웠다.
새벽부터 밤까지 바삐 움직이느라 주변을 둘러볼 새도 없었고,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과 이런저런 걱정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다른 것을 담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내가 과거의 정신없이 바빴던 나를 마주한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핸드폰 대신 하늘도 보고, 길가에 핀 꽃들도 보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니 틈틈이 너만의 행복들을 좀 챙기라고.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지천에 깔려있는 이 많은 행복들을 매일 놓치고 있다가 결국 불행해지지 않았냐고.
가끔씩, 기분이 정말 안 좋을 때가 있다. 주로 남편과 다투었을 때 그렇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화가 나고 눈물이 나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밖으로 나간다. 일단 밖으로 나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 산책을 하면서 행복들을 열심히 주워 담고,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차도 한 잔 마시며 행복을 충전한다. 그래도 남편에 대한 미운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을 때에는 주변 가게에 들러 예쁜 옷이나 소품을 산다. 화가 많이 날수록 비싼 물건을 산다. 남편에게 결제 알람이 가기를 기다린다.
'뭘 산 거야? 지금 어디야? '
남편에게 문자가 온다.
'몰라도 돼. 알 거 없어. '
약 오르지? 메롱.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렇게 내 마음은 완벽히 회복한다.
요즘은 작고 소중한 행복들을 발견할 때마다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면 왠지 행복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어쩌다 너무 정신없이 바쁘고 우울한 하루를 보내 행복을 찾는 것을 깜빡했다면, 아직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아이가 잠들기 전 옆에 누워서 힘껏 껴안고 뽀뽀를 마구마구 해대는 것.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백 프로의 행복을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