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출구를 나서며

Antonio Carlos Jobim의 Águas de Março

by 윤슬



작년 늦가을 첫 출근날. 5번 출구를 나서며


매일 출근하는 삶을 다시 시작하며

요즘 모두 누구나 제각기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힘들었다는 말을,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괜찮지 않았던 내 시간을 마주해보고 싶었다.

그래야 어디선가 불안정한 마음으로 애쓰고 있을 사람들에게도 마음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사 확정 연락을 받던 날, 기쁨보다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누군가에겐 축하할 일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너무 긴 어둠 끝에서 겨우 손에 쥔 작은 불빛 같았다. 한동안 ‘어디로 갈까’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만 생각했었다. 그 마음은,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작년 여름, 읽었던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나는 진지하게 이력서를 쓰고 취직 준비를 했다. 너무도 쓰리지만 음악은 한때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묻어두고 지금부터는 다시 회사에 속해 매일 출퇴근하는 삶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내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막상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파일을 전송해야 하는 순간이 되자 도저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걸로 바로 취업이 되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취업이 되든 되지 않든 그 파일들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것 자체가 중대한 분기점 같았다. 그 분기점을 넘어서면 마음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내 마음이라 해도 막을 수 없으리라.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군말 없이 살아가리라.”


— 류희수, 『오래 해나가는 마음』(음악과 창작의 태도에 대하여)


그 문장에서 나는 오래도록 멈춰 있었다.

달랐던 건 하나, 나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음악을 완전히 놓진 않을 거라는 것.



지난가을, 두 종류의 이력서와 자소서를 들고 수많은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비상근으로 있는 직장은 안정적인 기반이 되어주지 못했다. 요즘 세상은 매일 출근하며 풀타임으로 일하는 삶만이 무언가를 보장해 주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 해 안에 새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신과 절박함이 있었다.


“입사지원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이력서를 열람하였습니다.”


그다음 메일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은유 작가의 경험담처럼 낙방을 실감할 수도 없었고, 그냥 존재 무시를 당했다. 적지 않은 나이, 단절된 경력..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했다.

고층빌딩을 보며 생각했다.

“저 수많은 사무실 어딘가에, 내 자리가 없는 걸까?”

부딪혀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시작한 것이지만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는 하루하루, 자신을 다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오래전부터 일하고 싶었던 음악회사에서 채용공고가 떴다. 진심을 담아 서류를 보냈고, 대표 면접까지 봤지만, 최종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로 위로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얻은 건 실패가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내가 적은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전공과 경력을 살려 일할 수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모든 조건이 맞는 건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일이 버거웠는지, 성탄절 즈음 어느 날 아침 거울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쓰러질 것처럼 몸이 무거웠고, 결국 독감까지 심하게 앓았다. 그러는 사이 치아도 빠졌고, 일시적으로 고혈압이 왔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증상일 수도 있다고 했다. 여러 가지를 돌봐야 하지만, 우선적으로 몸을 더 부지런히 돌봐야 했다. 그새 함께 일 할 동료도 더 생겼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내 빈자리에 익숙해졌다. 전처럼 챙겨주지 못하는 티가 날 때마다 마음 한켠이 짠하다.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상담도 꾸준히 받고 있다. 바쁘고 고되지만,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님께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음악 전공자가 아닌, 비전공 음악인이다.

낮엔 숫자와 그래프, 엑셀, 각종 보고서와 함께 뒤섞여 주식운용을 하고, 밤엔 멀게 느껴지는 악보와 소리를 그리워한다. 일터에선 영혼이 ‘비주류’, 음악 안에서도 ‘비전공’이라는 경계에 서 있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경계에 있는 것. 그 자체가 내가 가진 힘일지도 모른다.

이쪽과 저쪽, 조금씩 할 수 있는 사람. 경계에서 조금씩 삶을 조금씩 확장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두려움은 있다. 냉정한 현실 앞에 할 수 있는 것을 더 우선적으로 택했지만 시간과 체력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고, 음악과 글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은유 작가님이 취업하는 과정에서, ‘돈도 없는데 삶까지 앗기긴 싫다’며 글을 쓰는 일자리를 구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음악을 하지 않는 삶은 이제 내겐 없는 삶이라는 걸. 전보다 더디겠지만 삶의 고단함 속에 영혼이 떠밀려가 글과 음악이 풍화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 4월, <그리고 봄>이라는 곡을 발표했을 때, 동료가 말했다.

“그 창작의 고통도 있겠지만, 멋지다.”

나는 대답했다.

“그만큼 보람도 있어요. 이제는 안 했던 시간으로는 못 돌아가요.”


삶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모든 걸 만족시키긴 어렵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포기할 건 포기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뿐이니까.


첫 출근 날, 5번 출구를 나서며 들었던 노래가 있었다.

Antonio Carlos Jobim의 Águas de Março,

3월의 비를 노래한 브라질 음악의 고전이다.


https://youtu.be/OCPcw10NgBs?si=IICNmk-U2J2atZvh


Águas de Março - GORO ITO BOSSA NOVA EXPERIMENT

feat. Paula & Jaques Morelenbaum



생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시간들, 그 시절의 찬란함을 품은 곡이다.

그 곡을 들으며 나는 나의 삶을 다시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전철을 나서며 <5번 출구>라는 제목으로 짧은 스케치를 녹음해 두었다.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출근길 뒷모습에서 나 역시 영감과 위로를 얻었고,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다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야 조금 적응한 기분이 든다.

어제는 처음으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 봤다. 만만치는 않았지만, 두 바퀴 위에서 한강바람을 가르며 혼자만의 속도로 달릴 때,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쉬어갈 땐 한강을 바라보며 문장들과 음악에 푹 기대었다. 그리고 갓 지은 흰쌀밥을 제일 좋아하는 아이가 엄마를 기다릴 마음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예전 직장 사람들도 다시 만나며 내 일상을 조금씩 다시 나누기 시작한 것도 요즘부터다. 매일이 삐그덕거리지만, 아주 조금씩, 나는 하루하루를 새롭게 그려나가고 있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는 것, 그게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다시 그려가는 방식이다.

지금 이 시간이, 내 삶의 궤적에 또 다른 포물선을 그리는 시작점이 되기를 믿고 싶다.



어제 자전거 출근길과 퇴근길







Antonio Carlos Jobim의 Águas de Março 곡설명

「3월의 비」는 조빔이 작사, 작곡한 곡이다. 남반구 브라질에서는 여름의 끝에 해당하는 3월의 풍경을 시적으로 그려낸 이 곡은, 생태주의자 조빔을 상징하는 명곡 중 하나이며, 조앙이 녹음한 버전은 궁극의 명연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버전은 조빔이 말년 약 10년간 함께한 밴드 '반다 노바'의 멤버였던 Paula(파울라, 보컬) & Jaques Morelenbaum(자크 모렐렌바움, 첼로) 부부가 함께 참여하였다. 파울라가 노래를 부른 장소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자르딘 보타니쿠(식물원)'로, 생전 조빔이 사랑했던 거목 앞에 선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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