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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6. 2023

소리를 낚고 있어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 에이싱크



아티스트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에 대해 생각한다.
자클린은 첼로를 안고 있을 때,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있을 때 그러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본인이 원하는 소리를 기어코 발견하고
만들어 내서 두 귀로 듣고 있는 순간이었다.

ⓒ photo by Alex Reside GQ


4월 23일 명필름 아트센터 영화관에서 류이치 사카모토 특별전을 관람했다.

『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CODA 』 와 『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 async 』 두 편을 연달아 볼 수 있는 일정이 있었다.  



자서전 『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는 2009년까지의 기록이 담겨있다.

스티븐 노무라 쉬블감독의 『 류이치 사카모토:코다 』는 2012년부터 동지진 이후 아티스트로 보이는 행보와 2014년 암발병과 활동중단, 그리고 2017년 에이싱크 앨범에 담긴 곡들을 작업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명필름 아트센터의 외관 일부와(좌) 극장 내부의 모습(우)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어디서든 OTT와 유튜브로 원하는 영상물을 골라볼 수 있는 시대다.

극장에 가야만, TV가 있어야만 영상물을 접할 수 있던 시간을 보내며 감성 어린 추억들을 새겨 본 경험들이 있어서일까. 요즘 영화관을 오가는 길이, 영화관에서 누리는 시간들이 일상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들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특히나 사운드는 가히 절대적이다.

『 코다 』에서 류이치 사카모토가 중요시 여기는 자연의 소리, 다양한 사물의 소리, 신서의 울림, 피아노의 배음과 잔향들을 통해 갈망하는 음들의 영속성. 또 그 영속성을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문명의 전기를 이용한 신서의 활용은  더 깊고 세밀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명필름 아트센터의 음향도 돌비 애트모스 Dolby Atmos로 설계되어 작품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 줬다.


어쩔 수 없는 모순이지만 두 작품을 상영관으로 만나게 된 것이 참 다행이고 좋았다.

그러면서도 그 기회가 그분의 서거 이후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은 그저 마음이 아프고 아쉽고 애틋할 뿐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소리에 대한 집착과 몰입



류이치 사카모토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몰입, 그 과정의 모습들에서 아티스트다운 면모를 보게 된다.

창작자가 추구하는 소리의 완성도를 향한 날카로운 섬세한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 집요하리만치 찾아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경계를 넘어서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완성된 작품들이 탄생한다.


마침내 류이치 사카모토가 “이거지!”하며 환하게 만족하는 표정을 볼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기쁜 웃음이 얼굴에 꽃피는 순간.

그러다 이내 마음이 벅차올라 숨 한번 들이키고 애써 울음을 삼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티스트가 원하는 명확한 사운드의 그림이 있으면, 일단 선율과 화성 리듬으로 표현해 내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 낼지 기술적인 부분이 해결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해보고 싶고, 해 볼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게 내 심장을 벅찬 기대감으로 뛰게 만든다. 그 과정은 물론 고단하기도 하지만 기꺼이 달게 평생 감내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 마음을 깊이 깨달은 건 비로소 최근이었다.


그래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내 속도로 즐겁게 꾸준히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말이다.






원하는 빗소리를 찾기 위한 여정(좌) 과 포스터(우)   ⓒ명필름 아트센터 홈페이지



『 코다 』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인후암 판정 후 모든 활동을 중단한다. 하지만 존경하던 이냐리투 감독에게 의뢰를 받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고 새 앨범도 준비한다. 다시 시작점에 선 그가 듣고 싶은 소리를 탐구하고 찾아나가는 과정들에서 인상 깊게 다가온 구절들을 모아봤다.



" 자연스러운 소리를 듣는 욕구가 강해요."


" 타르코프스키가 바흐 코랄 전주곡을 먼저 사용해서 분해요. 비슷하게 만들어봐야죠."


마지막사랑 오케스트라 40인조 녹음을 앞두고 오프닝을 바꿔달라는 감독의 요청에 안된다고 거절하자 감독이 " 엔니오 모리꼬네는 바로 해주던데? "라는 말을 듣고 "30분 만 시간을 주세요. " 하고 고쳤다는 이야기.


" 세상의 음향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타르코프스키의 그 작품을 하면 정말 기쁠 것 같았어요."


" 억지스러운 소리에 대한 혐오감이 내 안에 있어요.

피아노가 내는 소리는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아요. 나무를 6겹으로 6개월 동안 누르고 압축해 내서 틀을 만들고, 산업혁명 이후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이 내는 소리죠. 이 음을 치고 시간이 흐르면 사라져 버려요. 음 지속의 영원성은 피아노엔 없어요. "


이 소리는 (동지진 때 피아노가 물에 완전히 잠겨서 피아노 소리가 엉망이 된 상태) 비로소 자연에서 온 쓰나미가 조율해 준 자연스러운 소리예요. 엇갈리는 소리.


(북극에서 흐르는 빙하에 마이크를 넣고 녹음하며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 소리를 낚고 있어요. 제가 세상에서 들어본 소리 중에서 가장 완벽한 소리예요."


" (바흐 곡을 치면서) 조금씩 손가락을 움직여 보려고요. 심각하거든요. "



류이치 사카모토가 언제 환하게 웃는지 명확하게 보인다.  본인이 원하는 소리를 표현해내고자 하는 열망. 그 기대를 실현으로 이뤄내는 순간들이 다 그분의 말속에 녹아있다.







엔딩크레딧이 화면에서 사라질 때까지, 상영관에 불이 켜질 때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난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집중된 분위기를 사랑한다. 마치 공연장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 에이싱크 async 」앨범의 작업기를 『 코다 』에서 본 후, 이어서 공연 실황을 본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이런 류의 음악은 깊은 새벽에 노캔으로 듣거나, 상영관에서 보거나, 그 현장에서 있거나. 하지 않으면 깊이 빠진 채로 감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https://youtu.be/z9tECKZ60zk

작년 12월 온라인 콘서트 영상의 Merry Christmas Mr. Lawrrence


코다 』에서 전곡이 연주된 것은 바로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가 유일했다. 첫 선율이 나올 때 울컥하고 사레들려서 참을 수 없는 몇 번의 기침을 해버렸다. 부끄러웠지만 그 순간도 내게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잔향들이었을 거란 생각에 기록하며, 곡은 여러버전 중에서 작년 온라인 콘서트 영상으로 감상하며 올려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고 이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많은 상념에 잠겼다.

Walker라는 곡에서는 기타의 볼륨페달이나 기타신스로 음의 경계가 없는 연속성을 만든다.  피아노음이 끊기는 아쉬움을 그가 혐오한다는 부자연스러운 기계의 소리로 음들의 영속성을 그리며 달랜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 조차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소리'일지도 모를 역설과 모순을 엿볼 수 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일까?


올해에 표현하고 싶은 음악의 주된 색채는 공간감이다. 레퍼런스로 모아놓은 곡들이 신스의 기능을 활용한 곡들이 많아서 이 공간감을 어떻게 해결하며 만들어갈지 계속 고민하고 공부하며 부딪히고 좌절하며 기쁘고 즐겁게 길을 걷고 싶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강한 사랑을 느낀 지점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눈물난다. 기어코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소리. ⓒkab Inc.







마지막으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감독의 『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에 나오는 시를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 시가 흐르는 영화장면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곡은  ‘ fullmoon ’이라는 곡이다. 이 나레이션과 어울리는 소리를 만들어 내고 만족하고, 행복하게 웃다가 이내 벅차올라서 애써 눈물을 참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바로 그가 그녀를 마주하던 순간이었다.


https://youtu.be/AlxUUNU_0o8

2017년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 공연 실황. 「async」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로 비동시성, 소수, 혼돈, 양자물리학, 인생무상 등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삶이 무한하다 여긴다.


모든 건 정해진 수만큼 일어난다.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어린 시절의 오후를

얼마나 더 기억하게 될까?


어떤 오후는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날일 것이다.

네다섯번은 더 될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겠지


꽉 찬 보름달을 얼마나 더 보게 될까?

어쩌면 스무 번

모든 게 무한한 듯 보일지라도.


- 폴 보울스 Paul Bowles, 『 full moon 』











함께 보면 좋을 2022년 12월 류이치 사카모토 Playing the Piano 2022 온라인 공연 후기입니다.

https://brunch.co.kr/@minachoi/21


p.s  이번 주 수요일의 슬픈 비터스위트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코다, 에이싱크 감상후기로 대신합니다. 다소 쌀쌀한 봄날, 모두 건강한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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