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Tannenbaum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로에 갔다. 혜화역은 대학병원, 연극가, 대학들이 있는 곳이라 늘 인산인해다. 한창 기말고사 끝나는 기간과 연말이 맞물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마로니에 공원 근처를 지났다.
얼마 전에 가로수 정리를 한 것일까?
나무들은 모두 똑같은 미용실에서 무심한 손길로 갓 나온 듯 어색한 길이감으로 서 있었다. 나무마다 각자 지나온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어딘가 모르게 모두 비슷하게 보였다.
개인이 집에서 키우는 화분이라면 모를까, 수많은 나무들을 한꺼번에 정해진 일정 안에 정리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형을 감안해서 잘랐으면 얼마나 더 멋졌을까? 아니 가로수 나무야 늘 그래왔으니 그렇다 쳐도, 마로니에 공원 안에 있는 커다란 나무까지 그렇게 잘라버리다니..
길을 건너 시끌벅적한 도로를 벗어나 어느 한적한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기류가 빠르게 달라지며 풍경이 일순간에 달라짐을 느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흘렀다.
어? 가로수가 소나무네?? 가로수가 소나무??
둔턱이 낮고 인도가 넓은 일방통행 1차선의 길가 양쪽으로 비슷한 높이의 소나무들이 쭉 들어서 있던 것이다. 얘기하며 걷고 있던 터라 몸의 귀는 일행을 향했지만, 이내 마음의 귀는 이 길에 늘어선 소나무를 향해 있었다.
나누던 이야기가 얼추 끝나자 넌지시 말을 건넸다.
“ 실례지만, 이건 좀 다른 얘긴데요. 지금 저희가 걷는 길 가로수 나무가 모두 다 소나무예요! “
“ 아~ 이 길을 소나무길이라고 부르지. 조성한 길이야 ^^ “
“ 진짜요? 너무 운치 있고 멋져요. 수형도 신경 써서 관리한 것이 느껴져요. 여기에 한옥들이 있다면 더 아름답겠어요. “.
“ 우와~ 그러면 전주 한옥마을 같겠네요! “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에 연신 비내리는 요즘이지만, 이 비가 원래 눈이라고 상상하니 너무 따뜻했다.
모든 잎이 져버린 이 겨울 아닌 겨울에 늘 곧고 푸르른 소나무길을 걸으니 너무 근사했다.
그 이후, 나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꼭 소나무길로 연습실을 오가고 있다.
4번 출구와는 작별을 고하고, 조금 더 돌아간 3번 출구와 반가운 맘으로 인사를 나눴다. 연습을 마친 후 사랑하는 나누미에 들러, 통통하고 쫄깃한 어묵하나를 먹고 국물을 호로록 마시며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소나무길로 향하는 이 길이 참으로 설레고 좋았다.
내일은 떡볶이를 먹어야지.
그리고 여유되는 날은 창덕궁도 걸어야지.
짧은 시간이지만, 연말까지 주어진 그 시간동안 난 이 거리를 즐기기로 했다.
https://youtu.be/Ld7n9ZaFGks?si=O5v6F2Gt4ClKVFIT
https://youtu.be/9LTv3yi5ZS0?si=37CRBPXLjmUY-s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