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ape of water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이 글은 영화결말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아름다운 곡이 흘러나왔다.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으로 참여한 영화음악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니,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그렇듯 음악이 데려다준 또 하나의 영화, The Shape of Water :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으로 주류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폭력적 세상에서 괴로움을 받다가 낙원으로 복귀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90회 아카데미 13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그중 4개 부문 작품상,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다크판타지로 아주 어두운 현실을 동화로 만들어 냈다.
-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124 중에서
https://youtu.be/AfuMFHB80HE?si=xYGwopLFY1sgKjpF
언어 없이 한계를 뛰어넘는 사랑을 노래하는 영화가, 여기. 있다.
사랑을 표현하기에 온전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작가는 말과 글로 최대한 근원에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화가는 빛깔로 형체로 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음악가는 선율과 리듬 화성으로 노래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 무엇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면 수단은 한계가 되고, 무용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유 없이 나눠주는 저 찬란한 햇빛처럼 늘 같이 있는 마음을 어찌 다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말은 오해의 근원이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어린왕자 속 여우의 말처럼 이 영화가 전하는 사랑은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출발하여 ‘무언’으로 꽃 피운다. 사랑의 본질, 순수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며 짙은 여운을 가만하게 안겨주었다.
여주인공인 엘라이자, 사랑에 빠진 괴생명체인 크리처를 구하기 위해서 그녀의 이웃인 자일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의 대사이다. 도와주지 못하겠다며 돌아서는 그의 팔을 세차게 잡아 되돌려 세우며 그녀는 다시 한번 간절하게 매달린다. 격앙된 수화로 말이다.
나는 뭐죠?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끗거리고
나도 그 사람처럼 소릴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
내 모습 내 인생 전부가 날 그 사람에게 이끌었어요.
날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내가 어디가 모자란 지
어떻게 불완전한지
모르는 눈빛이에요.
그 사람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요
그 사람은 날 볼 때마다 행복해요. 매일.
이젠 제 손에 달렸어요.
구하든지. 죽게 두든지.
날 있는 그대로 보고, 날 볼 때마다 그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엘라이자.
어떠하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기에 온전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의 로맨스와 에로스
물은 이 영화의 중요한 메세지 전달 요소다. 엘라이자와 크리처의 사랑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항상 물이 등장한다. 그들의 사랑은 물 안에서 고양되고 완성된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욕실을 물로 가득 채워 사랑을 나눌 때, 엔딩장면에서도 물은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준다.
https://youtu.be/HA8dDFFvOUw?si=rbMdHO9A88Ubxaca
얼마 전 읽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중에서 ‘바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대지와는 달리 바다는 인간들의 노동과 삶의 흔적들을 지니지 않는다. 어떤 것도 머물지 않으며 스치듯 지나가기에, 바다를 건너는 배들의 항적은 그 얼마나 빨리 자취를 감추던가! 이로 인해 지상의 사물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바다의 엄청난 순수성이 생겨난다. 곡괭이를 필요로 하는 딱딱한 대지보다 바다라는 순결한 물은 훨씬 더 섬세하다.'
순결한 물이기 때문에 가지는 순수성.
그렇기에 무정형, 즉 물의 무한한 형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물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기에 사랑의 형태도 없으며 스스로가 정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크리처는 그녀를 품에 안고 함께 물속으로 뛰어든다. 총상으로 숨이 꺾여 버린 그녀를 바라보며 목의 흉터를 소중하게 어루만진다. 그리고 반짝이는 푸른빛을 내뿜으며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 순간 엘라이자는 숨을 내뱉으며 눈을 뜨게 된다. 고통의 상처가 사랑의 아가미가 되어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새 생명의 탄생. 도종환의 시 <우체통>의 이 말처럼 ‘ 그들이 줄 수 없는 것을 주며 견딜 수 없는 걸 견딜 수 있게 하는 사랑의 힘’ 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태아는 엄마뱃속 양수 안에서 자라다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폐로 첫 호흡을 내뱉는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음을 찬란한 울음을 터트리며 스스로 알린다. 엘라이자도 크리쳐의 신비의 사랑으로 인해 아가미로 새로운 호흡을 시작하며 새 생명을 얻었다. 이제 크리처와 엘라이자는 모양이 없는 물, 무한한 형태의 물 안에서 그들만의 사랑을 이뤄나갈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나면서, 자일스가 엘라이자를 떠올리는 하나의 시를 나즉히 읊어준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수백 년 전에 읊조린 시
페르시아 시인 하킴 사나이(Hakim Sanai 1080~1131)
Unable to perceive the shape of You
그대의 모양 무언지 알 수 없네
I find you all around me
내 곁에 온통 그대뿐
Your presence fills my eyes with your love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It humbles my heart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For You are everywhere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피노키오를 보며 기예르모 감독의 작품에 관심이 가게 된 찰나에 우연히 음악을 접하고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묘사는 다소 기괴하며 잔인한 면도 있어서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미적인 연출감각과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로맨틱한 음악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아름답게 꽃 피워냈다. 다양한 모양의 물방울처럼 규정짓지 않는 사랑, 무언으로 말하는 순수하고 에로스적인 사랑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두 개의 곡이 있었다.
하나는 EGO-WRAPPIN'의 < 만조의 로망스 >,
또 하나는 시와 음악, 합창가곡 < 무언으로 오는 봄 >이다.
https://youtu.be/zZMV2KPR4fo?si=KOihb7-_9lgCh3Sq
일본 아티스트 중에서 제일 사랑하는 팀이다. 언젠가 소개하겠지만, 오늘은 만조의 로망스라는 곡을 소개한다. 파도 소리가 은은하고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이 곡이 엘라이자가 사랑에 빠진 눈빛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https://youtu.be/B-DTdXsgn2w?si=sFtt_I7zifjLQL4v
박재삼의 시에 조혜영 작곡이 더해진 합창가곡 < 무언으로 오는 봄 >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엘라이자와 크리처,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피어나는 한계 없는 사랑과 이 가곡은 봄이 오고 있는 이 계절과 잘 어울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사람의 목소리로 이 곡을 들으며 둘의 사랑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빅토르 위고의 <에르나니>의 한 구절.
‘ 감미로운 음악이 영혼을 조화롭게 만들기에, 신성한 합창이 마음속에서 노래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깨우는 듯하구나. ‘
사순시기 미사와 십자가의 길을 반주 봉사로 바친 날, 이 글을 썼다. 시와 음악, 영화가 모두 한 데 어우러진 글을 쓰면서 위안이 되었다. 하루의 무너짐을 주님의 기도로 일으켜 세우고, 글쓰기와 책과 음악안에서 위안이 되는 시간들이 좋다. 이 날은 꽃샘추위로 공기는 얼음장 같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머리를 비워주는 쨍한 쾌청함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바람 끝엔 봄빛깔이 살랑거렸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