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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Jun 04. 2020

뜨거운 열기 속에서 찾아온 절망

삶이 무섭게 낯설어지는 순간

오랜 이동 끝에 비롯된 여독 때문인지, 아니면 한여름의 기록적인 열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돌아온 나의 집은 너무나 낯설었다. 언제나 다정했던 나의 집은 유난히 누런 색을 띄며 사막처럼 뜨겁고 황량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가죽 소파에 누워있자니 나는 아무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과거도 미래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낯선 시간과 낯선 공간 속에서 현재를 이해하고자 애썼다. 쓸쓸했고, 그리웠고, 두려웠고, 슬펐다. 삶은 그럼에도 살아질테니 이 혼란도 언젠가 가시겠지 희망했다. 그러나 사막에서는 희망조차 아지랑이처럼 흔들거렸기에 나는 그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릿속을 제멋대로 스쳐지나갔다. 그 중 무엇도 붙잡을 수가 없어 또 슬펐다. 생각들을 하나씩 붙잡고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그려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 뜨거운 열기는 왜 나의 생각들은 녹여버리지 못하는 걸까. 없애지도, 붙잡지도 못하는 생각 속에서 나의 희망은 등을 따라 흐르는 땀처럼 내 몸에서 조금씩 빠져나갔다. 이 순간은 나의 삶에서 추방된 이방인과 같았다. 어느 곳과도 연결되지 못한 외딴 섬과 같았다. 어지러이 흩어지는 이 모든 생각들을 이방인에게 맡겨버리고, 그리고 외딴 섬에 묻어버리고 아무 일 없던 듯이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문득 이날의 이방인과 외딴 섬이 언제고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그럼 또 쓸쓸하고, 그립고, 두렵고, 슬퍼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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