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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Jun 02. 2020

분주한 마음 속에서 찾아온 불안

삶이 무섭게 낯설어지는 순간

하루가 끝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문득 사고가 멈추었다. 이 많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울상을 하고는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머릿속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떠올리기에 바빴다. 마구잡이로 잘라 붙인 필름처럼 과거의 기억들이 뒤엉켜 쏟아져 나왔다. 미간 깊숙이에서 찌뿌둥한 무게가 느껴졌다. 머리를 가볍게 비우고 싶었지만 그보다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무언가가 더욱 무겁게 내려앉아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도 머리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차 그저 무거울 뿐이었다. 가만히 앉아 심호흡을 해보려 했다. 그러나 적막함을 견딜 수 없어 이내 몸을 일으켰다. 조용한 노래를 틀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공허함을 견딜 수 없어 이내 몸을 일으켰다. 마음이 너무 바빠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에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고 이것저것을 건드리며 참으로 바쁜 한나절을 보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수면에 파동이 일고 그 아래 가라앉은 흙이 뿌옇게 피어오른다. 고요히 일어나는 이 움직임은 서서히 가라앉아 호수는 금세 아무 일 없던 듯 평온을 되찾는다. 그런데 이날은 돌멩이 하나가 일으킨 동요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다른 돌멩이가 호수에 첨벙 떨어지고 또 다른 돌멩이가 연이어 첨벙첨벙 떨어지는 격이었다. 도무지 이 돌멩이들을 막을 길이 없었다. 고요를 잃은 호수는 점점 혼란에 빠지고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기에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너무나 부끄럽고 그립고 애틋했다. 수많은 과거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동안 마음으로 미래를 붙잡아 보았다. 그 순간들도 이토록 빠르게 재생되어 결국 남는 것은 과거밖에 없으리라 생각했다. 피고 지는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지는 것으로 끝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과거와 미래를 머리와 마음으로 분주히 오가는 사이 현재는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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