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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Jun 06. 2020

고요한 어둠 속에서 찾아온 공포

삶이 무섭게 낯설어지는 순간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주변 공기가 움직임을 멈춘 듯 고요하고 모든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다. 오직 내 존재가 차지하는 부피만큼만 내게 허용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자칫 잘못 움직여 허용 범위를 넘어버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온몸이 뻣뻣해진다. 갑작스레 심장이 조이고 호흡은 또렷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안을 돌고 있는 피가 차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넓은 세상에 홀로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무대 위 세트처럼 느껴진다. 정면에서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뒤로 돌아가 보면 조잡하게 엮은 나무판자들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공간. 무대를 벗어나려 당장 거리에 나가 보면 아무도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것 같다. 혹은 어느 거리를 돌아보아도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못할 것 같다. 온 세상이 무대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기억 속에 처음 이런 기분이 남은 건 초등학생 때 수련회에 갔을 때다. 수련회 첫날 저녁에 이런 공포를 느꼈었다. 자세한 사정은 기억나지 않지만 심장의 박동과 정지한 듯한 공간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 후로도 종종 이런 순간이 찾아왔다. 익숙한 곳에 있든 낯선 곳에 있든, 누군가와 있든 혼자 있든, 어느 잠 못 이루는 늦은 밤에 불현듯 나타났다. 어떠한 징조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일정하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얼마간 눈을 감고 있다 수면 상태로 들어가기 직전의 순간이다. 꿈과 현실 사이의 틈에 누군가 찔러 넣은 칼에 기습을 당하 듯, 혹은 꿈의 세계에 입장을 거부당하고 엉덩이를 차이며 내쫓기 듯, 그렇게 갑작스레 헉하는 짧은 호흡과 함께 깨어난다. 깨어나 보면 현실은 움직임을 멈추었고 넓은 세상에 나는 비좁게 존재한다. 공포는 그렇게 갑작스레 다가온다. 그러나 영원 같은 그 순간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나는 스르르 다시 잠이 든다. 그리고 언제나 밝은 아침 해를 맞이하며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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