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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아 Jun 14. 2021

빌어먹을 편두통 덕분에

점심시간에 회사 동료와 함께 그날 저녁에 있을 월례 행사를 위해 장을 보러 갔다. 걸어서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조금 무리를 해서 병맥주 24개가 담긴 박스 하나와 자질구레한 양념과 안주거리를 샀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멀 수가 없었다. 게다 5월 치고는 꽤나 따가운 햇살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늘이 있을 때마다 멈추어 숨을 고르며 겨우겨우 회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진맥진 돌아온 나는 다른 동료들이 차려놓은 식탁에 앉아 목을 축였고 앞에 놓인 음식들을 급하게 먹어 치웠다. 그러나 아무리 시원하고 달달한 음료를 마셔도 몸에 박힌 따가운 햇살이 사라지지 않았고 곧이어 강렬한 두통이 찾아왔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예고 없이 문득문득 찾아오는 편두통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겪은 고질병이었다. 언제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별안간 닥친 두통에 엄마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왜 머리가 아플까 하고 내 이마를 짚어보았지만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나의 편두통은 예삿일이 되어 나는 딱히 처방을 찾지도 않았고 엄마에게도 그저 상황을 보고하듯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던지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 전부였다. 잠을 자고 나면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그랬었다. 몇 년 전부터는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두통 때문에 조금 난감했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그마저 익숙해져 언젠가는 사라질 고통이라는 것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주로 머리 앞쪽에 찾아오는 고통은 소리를 지를 만큼 아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고 견딜 만큼도 아니다. 두통이 심하게 찾아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몸을 누이고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나는 지옥을 떠올린다. 그건 정말 지옥 같기 때문이다. 그 고통은 누가 규칙적으로 내 두개골을 망치로 쳐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눈 앞에 청소기를 들이밀어 눈알은 물론이고 뇌 속에 있는 공기를 모두 빨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송곳으로 머리 깊숙이를 찔러 쑤시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심히 괴롭다. 거기다 그 고통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어디를 치료해야 하는 것도 아니오, 두통약이 잘 드는 것도 아니다. 침대에 누워 나는 무슨 저주를 받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명상과 요가를 시작하며 내게 주어진 이 빌어먹을 고통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신체에 문제가 있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정신의 문제 이리라. 그러나 명상을 하니 두통이 사라졌다는 신비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그저 고통을 느끼는 나의 몸과 마음을 살펴보려 했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나를 달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깨달은 것이 있는데, 이 고통이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두통을 겪는 동안 내 주변에 펼쳐진 현실이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처럼 느껴졌으니 그러했고 둘째는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으니 그러했다. 두통을 겪는 동안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 아마도 내 내면 속에서 고통과 싸우고 있다. 혹은 그 극심한 고통이 나를 확 끄집어 내면에 가두어 놓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나는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되어 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이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두통이 찾아오는 순간은 여전히 괴롭지만 두통이 사라진 후에 느끼는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에 시름하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해방되어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득히 멀기만 했던 세상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만 갖게 된다. 온 세상이 어찌나 새롭게 보이는지, 조금 과장하자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편두통은 내가 삶을 더욱 자주, 더욱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필요악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난다고 했던가. 게다 그 어둠이 고작 나 홀로 겪는 편두통이라니 이 정도면 거의 축복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따가운 햇살이 가져온 두통은 그날 오후 내내 간헐적으로 나타나다 밤이 되어 심히 날뛰기 시작했다. 잠을 자면서도 빌어먹을 두통이 느껴졌고 결국 그다음 날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잠을 잤는데 그다음 날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잠을 계속 자니까 사라지지 않는 거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잠을 자지 않으면 무엇으로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머리가 더 아파왔다. 언젠가 이 고통이 가신 후에 찾아올 새 세상을 떠올리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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