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를 딱 하루 보았다. 그리고 그날 내가 찍은 사진 속 그 아이의 얼굴을 흐리게 뭉개느라 며칠 동안 모니터를 통해 그 얼굴을 봤다. 행여 인파 사이에 묻힌 그 아이의 얼굴을 놓쳤을까 사진들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그 얼굴을 찾았었다. 사진 속 그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편하게 혹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몇몇 사진에서는 그 얼굴을 가려버리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밝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협박에 가깝게 신신당부를 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인상이 강해서인지 혹은 내가 사진 속에서 주의 깊게 그 얼굴을 찾아다녀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얼굴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선이 굵은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 푸른빛을 반사하던 선글라스 때문에 보이지 않던 눈, 날렵한 하관에 밝게 웃으면 훤희 드러나는 하얀 치아, 굵게 땋은 레게머리. 그 아이의 눈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 눈이 당연히 예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이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당연히 그 아이의 눈을 봤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시설물을 설치할 때 동네 아이들을 현장에 포함시킨다. 직업 체험도 하고 공공 활동에 참여도 할 수 있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 아이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세 남자아이 중 한 명이었다. 나는 현장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 마지막 날, 설치를 축하하는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그 자리에 갔었다. 현장을 생생히 담기 위해 무거운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쾌청한 날씨와 푸릇한 나무들에 사람들의 밝은 미소까지 어우러져 사진에 담고 담아도 성에 차지 않는 현장이었다. 바삐 사진을 찍던 중 설치 작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친구들과 모여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고 싶은 마음에 냉큼 카메라를 턱밑까지 들어 올린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 아이가 있었다. 내가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기도 전에 그 아이는 한껏 인상을 쓴 채로 나를 바라보며, 그러나 위협이라기에는 서투른 말투로, 내 사진은 절대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면 경찰이 얘를 잡으러 올 거라며 희희덕거렸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허풍이라 여겼지만 본인이 거부 의사를 밝혔으니 나는 그의 얼굴은 반드시 가리겠다고 약속하고 물러났다. 그 아이는 설치된 시설물에 붙을 명판에 본인 이름을 적는 것도 완강히 거부했다. 동네 어른들이 타일러도 절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못 박아 말했다.
몇 주 후, 프로젝트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아이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아이는 마약을 거래하는 조직에 몸담았으리라. 내가 그 아이가 사진을 거부하는 이유를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다들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마약 범죄가 고질인 프랑스 남부의 아이였다.
회사에서 명판에 그 아이의 이름을 넣을지 말지 의견이 분분했다. 세상을 떠났으니 그 아이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름을 적어야 한다는 의견과 본인이 원하지 않았으니 끝까지 존중해줘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겨우 며칠을 함께했던 우리가 감히 그 아이를 기리겠다고 그 아이의 의견을 반하는 것은 모순 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 아이에게 묻고 싶은 욕구가 불쑥 튀어올랐다. 그곳으로 돌아가 네가 죽었는데 그래도 이름을 남기기 싫으냐고 너무너무 묻고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수가 없기에 그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생의 마지막이 이렇게 금방 예고도 없이 다가오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더라도, 그 가능성을 잊지 않고 있었더라면 그 아이는 명판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허락했을까. 그 아이는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날 내게 서투르게 협박하던 그 아이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을까. 그 순간에 어떤 눈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날 그 아이의 빛나던 얼굴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