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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호준 Jan 08. 2020

지와사랑

책을 읽고

 지와 사랑,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하다보니 읽는 데 꽤 오래 걸렸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어린 시절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독서하기 보다는 언어에 담긴 의미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어릴 때는 느끼지 못한, 골드문트 심리와 감정상태를 탁월하게 묘사한 글이 다가왔다. 앞으로 독서에 있어 내용에만 집중하지 않고, 글이 서술되있는 방식과 단어선택 자체에도 좀 더 집중해 보아야 겠다.


 지와 사랑, 다른 제목으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이다. 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나르치스에 관한 분량은 초반 부분과 후반부분에 그친다. 그래서 처음에는 왜 제목을 저렇게 지었을까 생각을 했지만, 골드문트의 유언을 듣고 그의 말이 가슴 속에서 불타오른다는 나르치스에 관한 마지막 문장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에게 자신의 본성, 예술가로서의 숙명을 일깨워주었고, 그로인해 다시 만난 골드문트에게서 자신이 몰랐던 형상과 감정, 죽음의 세계를 예술작품과 대화로서 체험하게 된 것이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골드문트가 던지는 말, '당신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어머니가 없으니 어떻게 죽을 것인가?' 라는 그 유언에 나르치스는 가슴이 불타오른다. 가슴이 불타오른다는 의미는 나르치스도 이제야, 논리와 분석이 설명할 수 없는 생명과 죽음의 신비를 추구하려고 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골드문트는 방랑 생활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만의 불타는 어머니 혹은 이브를 찾아내고 나르치스에게 죽음을 앞두고 이 불길을 건네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건네짐은 결국 나르치스의 골드문트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어렵고 힘들지만, 나르치스라는 인물을 통해 지와 사랑의 결합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또한 논리와 분석, 지식만이 중시받는 현대 사회에서 순수한 쾌락과 고통, 죽음과 생명에 관해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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