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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Aug 03. 2023

무용하고 무형한 것들

<한여름의 꿈>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3_ 윤미내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無用) 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 나온 대사이다. 이 대사는 드라마의 ‘김희성’(변요한 배우)이라는 역할을 대변하는 명대사로, 드라마가 종영되고 나서도 온라인상의 각종 SNS에 머무르고 있다. 나 또한 이 인상적인 대사를 카톡 프로필의 한 면에 적어 장식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이 말을 기억하고 싶은 걸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무용’이라는 단어에 열광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없을 무(無)와 쓸 용(用)이라는 한자가 결합한 명사로, 말 그대로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사람,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우리의 존재만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배우기도 전에 말이다. 그것은 의무감에서 서서히 강박감이 되어 삶을 옭아매고, 자신이 어딘가에 성공적으로 쓰이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게 했다. 그런 우리에게 딱히 쓸모는 없지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는 이 읊조림은, 쓸모보다는 존재 그대로 간절히 사랑받기를 원했던 우리의 진심으로 쏟아져 나오기에 충분했다.




나는 여기서 살짝 숟가락을 얹어본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형(無形) 한 것들을 좋아하오. 믿음, 향기, 바람, 사랑, 노래 뭐 그런 것들.”


무용(無用)이 ‘쓸모’와 연관되었다면, 무형(無形)은 ‘실체의 유무’와 관련되어 있다.

사람의 몸은 오감(시각, 후각, 촉각, 청각, 미각 등)의 감각 기능이 있으나, 우리는 흔히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다섯 가지의 감각을 골고루 느끼며 살기보다, 좋아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고 아름다움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각적인 피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좋아 보인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고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부족함이 없는 재산과 화려한 삶, 조화로운 몸매와 변치 않는 젊음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마음과 정신의 권리를 점점 빼앗기고 있다.

나는 우리가 아름답고 무용한 것에 빠져들었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형체는 없지만 아름다운 힘이 있는 것을 찾는 일에 마음을 내줄 용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

가령, 믿음이란 어떠한가. 꼭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과 기대를 하는 마음이다. 그 희망적인 마음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 종교, 교육의 과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는 한다. 부모가 자식을 온전히 믿는 만큼 아이는 올바르게 성장하고, 좋은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학생은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세우는 법을 배운다. 죄를 지은 자들이 믿음을 갖고 종교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의 삶을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안에 들어와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바로 믿음이다.


향기

인간의 감각 세포 중에서도 상당히 민감한 편에 속한다는 후세포라는 것이 있다. 이 세포는 냄새를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냄새는 우리의 신체 중 얼굴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구멍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 작은 구멍을 통해 우리는 사람의 체취를 느끼고, 그리웠던 음식 냄새를 맡으며 누군가를 추억하기도 한다. 또,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꽃이나 바다, 흙냄새는 인간에게 끝없는 상상력을 제공하며 다양한 창작의 소재로 사용된다. 존재도 소리도 없이 우리 몸의 작은 공간으로 들어온 냄새는 뇌를 통해 신경 신호등을 켜고 기억과 추억의 길을 걷게 한다.


바람
‘바람이 되는 법, 바람처럼 나타나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법,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물들을 쓰다듬고, 멈춰있는 것들을 움직이게 하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법, 그리고 때때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사물의 뒷모습. p24]

안규철 작가의 책 ‘사물의 뒷모습’ 중 한 구절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감각이 섬세하게 작용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사랑과 노래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한다. 사랑의 역사는 수많은 책과 노래, 여러 영상매체와 종교 안에서 전해졌고, 현재도 인간의 관심 주제이며, 앞으로도 그 위대한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과연 정확히 묘사하는 이가 있을까? 인간의 심장 모양을 이미지화시켜 하트 모양으로 사랑을 표현한다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다리로, 혹은 고양이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무형하기에 각자가 떠올리는 시각적 이미지는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또 노래는 어떠한가. 시작되는 연인들에게 모든 사랑 노래는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가사 속에 나를 대입시켜 온종일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도록 한다. 그건 이별 노래를 듣는, 사랑이 끝난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쉽고 미련이 남는, 모든 이별 노래의 주인공은 본인인 것이다.

사랑과 노래는 인간의 감정을 한순간에 쥐락펴락하며 때론 일상의 현실감각과 집중력을 흔들기도 하지만, 삶에서 진한 감동과 눈물까지도 뽑아내는 마음을 주도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아름답고 무형한 것 중에 빠뜨릴 수 없는 존재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는 보이는 결과물을 위해 열심히 몰입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조화롭게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고, 오감도 마찬가지다. 이따금 눈을 감고 다른 감각에 고스란히 나를 맡겨 보자. 많은 힘을 쏟았던 눈에게 잠시 휴식을 주고 나머지 감각들에 집중해 보자. 무형하지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들에 허기졌던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그 깨달음은 소외되었던 감각을 위로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분산된 감각들은 몸의 구석구석에서 무한한 원동력이 되어 우리에게 건강한 삶을 안겨주는 마땅한 임무를 다할 것이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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