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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Sep 22. 2023

문신과 타투의 차이

<꽃반지>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3_ 윤미내


현재까지 내게는 두 개의 문신이 있다. 첫 문신은 아이가 여섯 살 때, 두 번째 문신은 열한 살 때 몸에 새겼다. 첫 문신을 결심할 당시 나는 열두 개의 나이별 띠와 탄생 별자리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띠와 별자리를 재해석하고 그 이미지를 기하학적인 패턴과 곡선을 이용하여 샤프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샤프의 흑연 색감이 문신을 새길 때의 먹물 느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문득 내 작업이 문신으로 표현되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가장 먼저 내 몸에 새겨보기로 하고, 12월생 궁수자리 그림을 손등 위에 문신했다.


첫 문신을 하고 온 이후, 여섯 살 딸아이는 그것이 예뻐 보일 때도 있고 이상해 보일 때도 있는 듯했다. 자신도 어른이 되면 문신을 할 것이라며 볼펜으로 손등에다 이것저것 그려보기도 했지만, 또 어느 날은 아무것도 없던 깨끗한 엄마의 손등이 느닷없이 시커먼 그림으로 덮여있는 게 못마땅한지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개의치 않아 했다.


딸은 내가 말하고, 입고, 사용하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내 주변에는 신기해 보이는 물건이 많았고, 무엇이든 뚝딱 그려내는 모습을 놀랍게 생각하고 닮고 싶어 했다. 딸은 항상 내 곁에서 질문하며 놀기를 바랐으나, 나는 일하는 엄마이기도 했기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저녁 이후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찾아온 주중의 휴일은 딸에게 온전히 쓰고 싶었다. 소중한 휴일, 딸이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은 유치원 하원 후 놀이터에 가는 것이라 했다. 아이 하원은 친정엄마가 맡아해 주셨는데, 아마도 딸은 엄마와 함께 하원하며 놀이터를 들렀다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향했다. 익숙한 일상인 듯 엄마들끼리는 서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이를 실컷 놀게 하려는 마음으로 놀이터에서 읽을 책과 커피, 간식을 준비해 왔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놀이터라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제 영역에서 서로의 존재를 약간씩 의식한 채, 하지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딸은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이자, 평소에 하원 멤버가 아니었던 나의 등장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얘들아, 우리 엄마 손에 문신 있다!”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있던 엄마들은 일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딸의 친구들은 “문신이 뭐야? 와! 보러 가자!”라며 마치 놀이동산 인기 있는 기구의 줄을 먼저 서기 위해 뛰는 아이들처럼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조용히 책을 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나를 향해 달려온 아이들에게 손등의 문신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문신이 아니라 타투야.



어학사전에서 문신과 타투의 의미를 찾아보면,

‘살갗을 바늘로 찔러 먹물이나 물감으로 글씨, 그림, 무늬 따위를 새김. 또는 그렇게 새긴 것’

이라고 똑같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굳이 어학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나는 문신과 타투가 같은 뜻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딸과 친구들에게 내 문신은 ‘문신이 아니라 타투’라고 이야기하다니. 어이없는 말이다.


종종 지인들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해주고는 한다. 갑자기 주목된 시선에 당황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며, 대부분 너무 개의치 말라고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문신이 아니라 타투’라는 말이 부끄러웠고 아이들에게 다시 설명하고 싶기까지 했다.




요즘은 문신이 패션의 아이템으로 사용될 만큼 많은 이들이 즐겨하고, 또 스티커의 형식으로도 판매되어 자신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문신은 주로 조직폭력배나 불량한 사람들이 공포감 조장을 위해 하는 것으로, 인식 자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문신이라는 말은 용이나 호랑이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언짢은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타투라는 표현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더 캐주얼하고 요즘 유행의 한 흐름 같은 거라고 말이다.


내가 문신대신 굳이 타투라는 말을 선택한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을 대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불량한 이들의 상징이기도 했던, 몸에 새긴 용 그림이라는 인식. 그것이 문신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각인해 놓고, 내 문신은 그것과 같은 종류지만 실제로 나는 행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타투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에 거짓 없는 마음 하나를 보태자면 문신을 타투라고 하는 것이 더 고급스러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내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런 선입견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는 데 있다. 세상에 대해 아무 편견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들인데, 한마디 말로 작은 선입견의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으로 남아있다.


일상 속에서도 문신과 타투와 같은 선입견은 존재한다. 그 선입견이 별로 거슬리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 해프닝이 오래도록 기억될 만큼 떳떳하지 못한 일로 남아있다. 물론 긍정적으로 발휘될 때의 선입견은 자신을 보호해 주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만든 관념을 깨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 법이다.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는 각자의 몫이다. 선입견 없는 자유로운 어른이 되고 싶던 욕심은 그때의 부끄러움을 내 몫으로 남겨두었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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