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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Mar 01. 2023

맛없기도 힘든 카레

<공감>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3_ 윤미내


서너 가족이 함께 캠핑한 적이 있다. 우리 가족만의 캠핑은 안락함과 휴식이 있다면, 여러 가족이 함께하는 캠핑은 다양한 먹거리와 수다, 왁자지껄한 에너지가 있다. 약속한 곳에 모인 가족들은 제각기 맡은 역할로 분주했고, 나는 점심 식사를 담당하기로 했다. 점심 메뉴로는 특별한 반찬이 없어도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카레로 정했다. 고기를 볶고 먹기 좋은 크기로 야채를 썰었다. 카레의 고유한 노란 색감에 당근과 브로콜리가 더해지면, 알록달록 보기에도 좋은 요리가 된다. 다들 노동을 한 후에 먹는 음식이라 맛있게 먹어주었다. 두 그릇씩 먹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이렇게 많은 이들을 배부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도 느꼈다.

“카레는 제가 잘 만들어요”

뿌듯함에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테이블을 가로질러 내게 말을 건넸다.

카레는 맛없기도 힘든 음식이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내게 못마땅한 것이 있어 일부러 한마디 던진 것일까, 아니면 원래 대화의 방식인 걸까.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나도 순간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 말에 대한 민감한 마음만 가득할 뿐 순발력은 발휘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음식을 열심히 준비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도 얼굴이 있다. 말은 음성을 통해 전달되지만, 그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보이기도 한다.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예쁘게 느껴지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가령, 여럿이 등산을 가서 함께 정상에 도착한 상황이라고 해보자.

1) 같이 올라오니 더 상쾌하고 좋네요

2) 힘들지만, 정상에 오르니 나쁘지 않네요


일행 모두가 산에서 무사히 내려와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중이다.

1) 음식이 정말 맛있어요

2) 음식은 괜찮네요


1)번과 2)번은 결과적으로 ‘좋다’라는 같은 의미의 말이지만, 2)번의 대답에서는 뭔가 달갑지 않은 표정이 읽힌다. 물론 산행 중에 몸이 힘들었을 수도 있고, 언짢은 일이 생겨 기분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굳이 이런 표현의 말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곱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습관적인 태도가 보인다. 그렇기에 내면의 욕망이나 질투가 제한 없이 되풀이되고, 그런 말들이 쌓이고 쌓여서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거슬리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반면, 말이 예쁜 사람은 대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깊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말에는 아름다움의 향이 느껴진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꾸준히 매만지고 보살펴야 유지가 되는 것처럼, 고운 말속에는 오랫동안 손질하고 아껴온 모습이 보인다. 그 노력에는 진심과 품위가 느껴지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은 끌림이 생긴다.


나는 가끔 대화 속에서 거슬리는 표정의 말을 만날 때면, 그날의 ‘맛없기도 힘든 카레’가 생각나고는 한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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