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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Feb 01. 2023

‘너무’라는 부사가 주는 피로감

<쉼>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2_ 윤미내


뭐든 과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내게는 ‘너무’라는 부사가 그러하다. 모든 말이 두세 번 이상 반복되면 잔소리가 되는 것처럼 이 부사의 반복은 문득 피로감으로 돌아온다.

너무: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상태를 뜻하는 부사.

‘너무’의 의미 자체가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라 하는데 굳이 대화에서 ‘너무’를 너무(?) 많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너무 슬프다’, ‘너무너무 기쁘다’, ‘너무너무 힘들다’, ‘너무너무 아프다’...

내가 감정이입이 잘 되는 성향인 건지, 이렇게 감정의 형용사 앞에 반복적으로 사용되었을 때는 그 감정이 쏟아지듯 전달되어 듣기만 해도 피곤해진다.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데, 그 감정을 ‘나만큼 느껴라!’ 하며 심리적으로 지배당하는 기분이 들어 오히려 그 감정의 반대편으로 도망가고 싶어 진다. 이것은 대화 속에서 얼마나 사용되었는가에 따라 상대방의 입을 닫게 만드는 마법 같은 부사이기도 하다. 과한 ‘너무’의 사용은 대화 상대의 의견을 삼키게 한다.

 

‘너무 길다’, ‘너무 짜다’, ‘너무 빨갛다’, ‘너무 시끄럽다’, ‘너무 날씬하다’...

그렇다면 감정이 아닌 형용사 앞에 놓일 때는 어떠한가. 이럴 땐 왜인지 모를 부정적인 기분이 느껴진다. ‘길면 긴 거지, 너무 긴 건 뭐람’, ‘짜면 짠 거지, 너무 짠 건 뭐야.’ 나는 ‘너무’가 주는 이 부정적인 느낌이 싫어서 ‘정말’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사실 그게 그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나 또한 말이나 글에서 이 부사를 적지 않게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피곤함과 부담스러움을 느끼면서 왜 사용하는 것일까? 무의식 중에 사용되는 ‘너무’는, 보다 빠르고 강하게 그 감정과 상황을 전달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앞에 ‘너무’가 붙는다면, 그 말을 듣는 이도 나만큼 간절하게 공감해 주리라는 착각. 그 때문에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는 가스라이팅의 유발어 일지 모른다.

 



김애란 작가의 <잊기 좋은 이름> 책 중 ‘부사와 인사’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것은 설명보다 충동에 가깝고 힘이 세지만 섬세하지 못하다.'

‘부사’를 표현한 글이다. 대부분의 부사 역할이 진실함보다는 호소에 가까운, 견고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에 부사가 없다면 참 딱딱하고 재미없는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다. 적절한 부사와 적절한 ‘너무’의 사용은 감정을 나누기에 필요한 존재다.  

 

누구나 진솔한 대화를 원한다. 요즘같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이 거듭되는 시대에는 더욱이 만남과 대화는 귀하다. 껍데기 대화가 아닌 진정성 있는 숙련된 소통을 원한다면 ‘너무’의 남발보다 담백한 대화 표현을 구사해 보는 건 어떨까. 우선 나부터 말이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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