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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Nov 09. 2022

적당한 거리가 준 거리감

  

<그 해 우리는> 15.2x20.3 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2 _ 윤미내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다. 소중한 인연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는데, 나는 상대가 좋아져 버리면 곧장 달려가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는 했다. 짧고, 조금은 긴 몇 번의 사랑과 헤어짐을 경험했던 20대. 브레이크 없이 불타오르기만 한 서툴렀던 사랑의 감정만큼, 헤어짐도 강렬하게 질척거려서 부끄럽고 꺼내기 싫은 기억들이 있다. 감정을 행동으로 여과 없이 옮겼던 시기였기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또 헤어짐을 막아보려 했다. 그렇게 사랑과 이별을 날 것으로 임했기에 이 모두가 끝난 후에는 쿨하게 행동하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개나 소나 쿨, 쿨. 좋아들 하시고 있네. 뜨거운 피를 가진 인간이 언제나 쿨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나는. 내가 하나 가르쳐 줄까? 진짜 쿨한 게 뭔지? 진짜 쿨한 게 뭐냐면, 진짜 쿨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게 진짜 쿨한 거야.’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라는 드라마 속 한 대사이다. 감정에 솔직했던 행동들은 쿨하지 못한 것이고, 또 쿨하지 못한 것은 세련되지 못한 것이라서, 결국 쿨한 게 멋진 것이라고 결론지었던 나를 착각에서 꺼내 준 말이었다. 이후로 나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뜨거웠던 20대를 아름답게 기억하자고 마음먹었다.




누구나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나 상처받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상대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기도 전에, 먼저 적절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유지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순서가 바뀐 느낌이다.

최근 유행하는 책이나 글의 유형을 보아도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소중히 다룰 것을 강조하면서, 어떤 자극에도 상처받지 않고 방어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물론 맞는 말이고 나 역시 이런 글을 접하며 상처를 치유하고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는 했다. 그러나 이런 글들의 포화 상태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작은 희생도 원치 않고 자신만 보호하기에 바빠진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자신을 보호한다는 우선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관계를 조심스럽고 쿨하게만 끌어간다니. 열정은 빠지고 냉정만 커지는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다. 인연을 만나고 만들며,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들도 생길 것이다. 어느새 나도 20대의 열정은 사라졌는지, 본능적으로 끌리는 감정은 접어두고 좋고 싫음의 적당한 선에 멈춰 상대에 대한 감정을 통제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도 딱딱하고 둔해지는 것인지, 그런 조절이 가능한 나 자신에게 놀랄 때도 있다. 하지만 소중한 인연과 관계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지 의문이 들고, 그 의문은 씁쓸함을 주기도 한다. 쿨한 관계에서는 그만큼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정작 쿨내가 진동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 차가움에 시려 몸을 떨지 않는가. 드라마의 대사처럼 쿨할 수 없는 우리이고, 쿨할 수 없는 인생이다.

  

혹독한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이후로 대면 만남보다 온라인 만남이 잦은 요즘이다. 이마저 마음을 춥게 한다. 서로의 거리를 한 걸음씩 좁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관계를 만들고 싶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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