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Oct 12. 2022

편견과의 싸움


<The Cat> 15.2x20.3 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2 _ 윤미내


아이들에게 미술 지도를 하다 보면 질문을 받고는 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사물과 똑같이 그릴 수 있냐는 것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대답하고는 한다.

사과가 빨갛다고 생각하면 안 돼
손가락이 다섯 개라고 생각하면 안 돼


가끔 사과 그리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가 있는데, 어쩌다 보라색이나 녹색 물감에 붓을 대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사과를 망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빛을 숨기지 못한다. 사과를 표현할 때 '사과는 빨개'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사과 꼭지 부분의 노란 빛깔도 조금 덜 익어 연둣빛을 띄는 부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빨간색만이 사과를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사과 본연의 색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인체는 어느 각도에서 관찰하느냐에 따라 한쪽 다리만 보일 수도 있고, 귀의 양쪽 크기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인체의 일부인 손을 표현할 때는, 움직이는 손의 모양에 따라 보이는 손가락의 개수가 달라진다. 다섯 개라는 개수에 집착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손의 표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설명은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다소 철학적인 표현 같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문화와 사회적 환경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습득하고 학습한 결과로 사고한다. 어릴 적부터 불러온 노래 중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라는 노랫말이 있다. 이 노래에 누구나 학습되어선지 “빨가면?”하고 물으면 “사과!”라는 말이, “바나나는?”하면 “길어”라는 대답이 재빠르게 튀어나온다. 이 상황을 반복된 학습의 재밌는 결과로 여길 수도 있으나, 만약에 우리 삶에 절대적인 정의처럼 주입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어떤 대책도 없이, 그저 빨간 건 사과고, 긴 건 바나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관과 방식으로 사물을 표현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 중의 하나는 편견과의 싸움이다. 눈동자는 동그랗다는 편견, 손가락은 다섯 개라는 편견, 밤은 어두울 것이라는 편견. 이 싸움은 사물과 사물이 놓인 상황의 정의를 내려놓는데서 시작한다. 많은 실험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정의일지라도, 작은 차이와 다양성에 유연함을 둔다.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할 때 승리하는 확률은 높다. 편견의 눈을 감았을 때 비로소 관찰하는 눈이 밝아지기 때문이다.

문득 이 마음가짐을 삶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김과 상황을 어떠한 편견 없이 볼 수 있다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눈을 감고 잠시 꿈꿔본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이전 14화 당신은 어떤 모양의 달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