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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Sep 05. 2023

최선 말고 행운

<기다림>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3_ 윤미내


딸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태권도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배우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팔다리 크게 휘두르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오라는 마음에서였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하는 부모 대부분은,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일 테다. 그러나 딸은 태권도를 접하며 뜻밖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태권도장 가는 요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유치원이 끝나면 좋아하는 놀이터도, 마트도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옷장에서 저만한 작고 하얀 도복을 꺼내 스스로 갈아입었다. 본인의 스케줄에 책임감을 가지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는 어린 딸이 참으로 기특했다.

태권도장 앞으로 아이를 데리러 갈 때면, 사범님께 인사를 드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딸은 두 손을 모아 예의 바르게 90도 인사를 했다. 참관수업에 갔을 때는 애국가도 다 외워 열창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권도가 예의범절의 스포츠인만큼 아이의 태도에서 예절과 인내심이 느껴져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수련한 결과,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승품 심사라는 것을 앞두고 있었다. 태권도는 수련의 단계에 따라 허리띠의 색이 바뀌는데 딸은 새로운 색의 띠를 받을 때마다 기뻐했고, 이것이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본인도 국기원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다고 의욕에 넘쳤다.


국기원 승품 심사는 꼭 참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아이들은 통과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과 또 품새를 틀리지 않게 외워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딸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하는 국기원 심사 연습도 잘 소화하고, 의욕적으로 그 과정을 밟아나갔다. 본인 스스로가 워낙 열심히 준비하니 꼭 통과되어 아이에게 멋진 성취감으로 보상되길 바랐고, 심사비도 내고 참가하는 거라 비용이 허투루 쓰이지 않길 바라는 얄팍한 마음도 있었다.




심사 당일, 도복도 야무지게 입히고 머리도 흐트러짐 없이 묶어주었다. 그러고는 딸을 보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가서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런데 아이는 나의 응원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불편이 가득한 얼굴로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웅얼웅얼했다.

“왜…? 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니?”

나는 딸에게 물었다. 딸은 잠시 멈칫하더니 내게 말했다.

“엄마… 그 말은 좀… 그 말은 좀 별로인 것 같아.”

“어…?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별로였어?”

“응.”

최선을 다하라고 응원해 준 말이었는데, 아이의 ‘별로’라는 대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엄마가 뭐라고 응원해줘야 할까?”

“엄마…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좀 아닌 것 같고, 그냥 행운을 빈다고 말해줘.”

생각지도 못한 딸의 대답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일단 심사를 앞둔 아이에게 흔쾌히 행운을 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아이의 심사를 지켜보았다. 머릿속에는 행운을 빌어달라는 딸의 말이 내내 맴돌았다. 도대체 ‘최선을 다하라는 것’과 ‘행운을 빈다는 것’의 차이는 뭐란 말인가.

나는 곰곰이 아이가 하는 말의 흔적을 쫓아가 보았다. 눈으로는 심사받기 위해 줄을 서고 가끔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평소에 딸이 내게 하는 말과 친구들과 놀며 나누는 대화를 쫓고 있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아직 딸 또래의 언어 세계에는 ‘부담된다’, ‘긴장된다’ 등의 감정표현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부담스러운 거였다. 좀 더 담백한 응원과 엄마의 믿음이 필요했을 뿐이다. 딸의 언어를 해석한 순간, 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서둘러 두 눈과 머릿속 모두를 심사를 앞둔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래. 편하게 하렴. 엄마는 너의 노력을 믿어. 잘 될 거야.’

바람에 날고 있던 행운이 아이의 작고 하얀 도복 위에 앉기를, 팔을 뻗은 손에 닿길, 힘차게 차올리는 딸의 다리 위에 스치길. 나는 그렇게 기도했다.



얼마 후 아이가 1품 심사에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렇게 입학을 코앞에 둔 어엿한 예비 초등학생이 되었다. 입학식 날 딸의 손을 잡고 학교에 들어섰는데, 교문 바로 옆 큰 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선을 다하자!


나는 그 상황이 놀랍고 재미있어서 그 글귀를 가리키며 딸에게 이야기했다.

“최선을 다하라는데, 괜찮겠어?”

아이는 “으응…”하며 국기원 심사 날의 표정을 다시금 지었다. 하지만 아이는 최선을 다해 학교에 다녔고, 또 얼마 후에는 2품 승품 심사도 거뜬히 통과했다.


나는 도전을 앞둔 이들을 볼 때면, 딸의 승품 심사 날 대화가 떠오른다. 흔히 응원의 말로 ‘넌 할 수 있어’, ‘하던 대로 해’, ‘최선을 다해’라고는 한다. 격려해 주는 좋은 의미의 말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결전의 날에 당사자는 많이 긴장하고 경직되어 있을 것이다. 이 순간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응원은 힘이 잔뜩 실려있어서 심리적 무게감이 더해질 수 있다. 그래도 도전자의 곁에서 조금의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응원을 하고 싶다면,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주자. 우리의 몫은 그뿐이다.

당신에게 행운을 빌게요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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