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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May 29. 2023

당신은 어떤 모양의 달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바라보기>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3_ 윤미내


여름밤이었고, 나는 당시 여섯 살인 딸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고 있었다. 습하고 더운 공기가 감돌았지만 태양이 사라진 밤은 낮 기온보다 견딜만했고, 우리는 평소 가는 산책로보다 조금 더 돌아가는 길을 택해 걷기로 했다. 딸은 유치원 친구들과 선생님, 산책길에 피어있는 꽃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어떤 달이 제일 좋아?”


딸은 밤하늘의 달을 보며 묻고 있었다. 지금껏 나는 어떤 모양의 달을 좋아하는지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지만,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어야 했기에 달의 모양에 대해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음.. 엄마는 아주 얇은 초승달이 제일 예쁜 것 같아.”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달에 대해 배우며, 변화하는 모양에 따른 각각의 이름을 외우기는 했어도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들었던 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얇은 달이 왜 좋은 건데?” 딸은 다시 질문을 했다.


“꽉 찬 달보다 얇은 모양을 한 달이 가냘파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여서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드네."

언제부터 초승달에 대해 저런 마음을 품고 있었던 건지. 마치 오래전부터 초승달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보살펴온 사람처럼 대답했다. 그리고 아이의 질문으로 인해 초승달에 대한 내면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문득 나도 아이가 좋아하는 달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딸아이가 대답하기를 자신은 반달이 가장 좋고,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어진 달의 모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우리는 여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동안 달에 관해 이야기하고 산책을 마쳤다.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질문의 힘을 느낄 때가 있다. 어색한 자리에서 가볍게 서로의 근황을 묻는 것도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평소 우리나라와는 다른 외국 사람들의 생활문화에서 인상적이라고 여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연히 낯선 이들과 눈이 마주쳤을 때 다정히 안부를 묻는 모습이다.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늘 의상이 멋지다는 칭찬, 지금 기분이 어떤지 묻는 대화가 멋지다고 느꼈다. 간단한 질문이 오간 것뿐이지만, 그 대화 속에서 오늘 날씨와 내 기분에 대해 생각해 보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 주어지니 말이다. 이런 가벼운 질문 속에서도 우리는 찰나를 사고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상대에게 애정을 갖고 한 질문은 인생의 선택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한 중학생 시절, ‘영상, 패션, 공예, 조소..’등 세분된 전공 속에서 진로 선택을 앞두고 고민이 많던 나는 한 선생님과의 대화 중에 질문을 받았다. "넌 미술이 뭐라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관념적인 질문이었지만, 대화에 늘 진지하게 대했던 선생님이셨기에 나는 이 질문을 머릿속에 넣고 오래 고민하며 전공을 정했다. 당시 어린 나는 '그림을 그려야 미술이지!'라는 논리로 회화과를 선택했지만, 그 덕분에 현재도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어려운 순간이 올 때마다 여전히 이 질문을 떠올리고는 한다. 나에게 미술이 어떤 존재인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답을 구하는 인생의 질문으로 말이다.


대화 속에서 받은 우연한 질문은 생각지 못한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전 딸아이가 내게 했던 달 모양의 이야기처럼, 상대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더할 것 없이 대화는 깊어진다. 가벼운 질문, 인생의 갈림길에서 받은 질문, 우연한 질문. 그 어떤 질문이라도 내면의 나를 꺼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대화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위이기에 일방적일 수 없다. 그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상대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밑바탕이 된 질문을 통해 대화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그날 딸과 함께 올려다본 여름 밤하늘은 여느 밤과는 다르게 아름다웠는데, 달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아이의 질문 속에서 의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나를 알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질문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이보다 값진 재발견은 없을 것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본다.

당신은 어떤 모양의 달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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