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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Oct 30. 2023

명분을 위한 1할 2푼 5리의 노력

‘333’ 원칙

<가을> 15.2x20.3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23_ 윤미내


역사적으로 왕이 교체되거나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 그것을 주도하는 이들은 합당한 명분을 찾기 위해 힘을 쏟는다. 마땅한 명분이 없는 행동과 변화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설득력이 없는 행위는 지속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을 지도하며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동시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요구되는 환경과 교육을 제공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 꼭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내게는 글을 쓴다거나 그림 그리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충분한 명분이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책을 읽는 일들을 당장 멈춘다고 해도, 먹고살 일이 힘들어지거나 건강이 해로워져 삶을 지속시키지 못할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책이나 그림 도구를 사는 데 필요한 시간과 돈도 절약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구실과 이유를 제치고, 이 행위들을 계속해야 할 우위의 명분이 있다.






누군가 내게 어떤 일을 하냐고 물으면 나는 ‘그림 작가’라고 대답한다. ‘선생님’이라는 직분으로 그림지도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림 그리는 일을 한다고 밝힌 후에, 그림지도도 함께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는 선생님으로서의 경제적 수입이 그림 작가로서의 수입과 견주어도 월등히 안정적이지만, ‘나’라는 사람을 선생님이 아닌 '그림 작가'로 정의하고 싶다.



그림지도와 창작의 일은 결이 조금 다르다.


그림지도는 사물을 관찰하여 그림으로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과 그림 재료의 특성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 주목적이다.


반면 창작자는 사물과 상황에 본인의 사상과 신념을 담아,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이미지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솔직한 내 마음은 '그림 작가'로서의 업을 더 애정하는 바이다. 물론, 그림지도를 하며 수강생들의 실력이 향상되는 과정을 보면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창작을 위해 몰입하는 순간과 그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볼 때, 진정으로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이었음을 느끼고, 그렇기에 이 일에 더 빠져들게 된다. 당장 경제적인 보상과 피드백이 없어도, 그리는 일에 아낌없이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려야 할 이보다 더 뚜렷한 명분이 있을까.



더불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라는 매체로 그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공감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작업이 함께 어우러지는 ‘책’이라는 창작물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명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에 몰입하고, 그 마음을 자양분 삼아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보았다.

첫째, 하루 3가지 작업을 한다. 글쓰기, 책 읽기, 그림 그리기.

둘째, 각 1시간씩 총 3시간을 투자한다.

셋째, 3가지의 작업을 못 하게 될 경우, 할 수 있는 1가지의 작업을 3시간 진행하도록 한다. 하루 총량 3시간을 지킨다.


창작을 위해 해야 할 일과, 해낼 수 있는 시간을 정해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333’ 원칙이라 부르고, 삶에 적용하기로 했다. 어쩌다 운이 좋은 날에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3시간 이상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날도 찾아온다. 그런 날은 꼭 처리해야 하는 일상의 일을 끝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찬 기분을 느낀다.






어찌 보면 3시간은 명분을 내세우기에 변변치 못한 투자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중 먹고, 자고, 일하고, 가정을 돌보는 시간을 제외한 온전한 3시간은 나를 위한 발전의 시간으로 사용되기에 충분하고, 지켜내기 어려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루 24시간을 100으로 치면, 하루에 투자하는 3시간은 1할 2푼 5리의 시간이다. 야구 선수의 타율처럼 생각한다면, 1할 2푼 5리의 타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타자가 타석에 1000번 들어갔을 때 안타를 125번 쳤다는 의미인데, 아마 성적이 아주 좋은 타자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1할 2푼 5리의 안타 확률이 높아져 언젠가는 홈런왕이 되리라는 꿈을 꿔본다.

 

모든 창작자는 완성도 있는 작업을 만들기 원한다. 나 또한 좋은 결과물을 위해 일상에 '333'원칙을 부지런히 녹여낼 계획이다. 그래서 물리적인 결과물을 만들고, 1할 2푼 5리의 타자를 지켜보던 이들의 꼬리를 내리도록 만들 작전이다. 읽고, 쓰고, 그리는 1할 2푼 5리의 시간이 쌓여 언젠가는 만족할 수 있는 안타급 책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도 힘을 내어 글을 쓴다.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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