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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Oct 17. 2024

인생의 우선순위


 <우선순위 영단어>라는 교재에 색색의 형광펜으로 단어를 체크하며 암기했던 학창 시절을 기억한다. 무작위로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닌 출제 확률이 높고 중요한 단어를 우선으로 암기하도록 만든 이 교재는, 당시 꽤나 많은 학생들이 책가방에 넣고 다녔다. 외워야 할 단어들은 무한개인 것 같은데 그중에 순서를 매겨서 중요한 것들을 먼저 체크해 볼 수 있다니. 여기에 있는 단어만 외워도 영어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점에 가면 영단어 관련 교재가 많았지만, 성적 고민으로 마음이 불안한 학생에게는 ‘우선순위’라는 제목의 교재를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학창 시절의 시험 압박에서 벗어난 지금, 선택의 순간에서 얼마나 우선순위를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정작 성인이 되어서는 ‘인생의 우선순위’라는 말 앞에서 서먹서먹한 감정마저 든다. 처리해야 할 과제나 업무에 대해서는 철저히 우선순위를 지키며 해결해 왔지만, 인생의 주체자로서 ‘나’를 정확히 알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에는 서툴렀기 때문이다. 또한 ‘출제 확률’이라는 명확한 기준 하에 선택된 영단어 교재와는 다르게, 인생 앞에 놓인 문제들은 풀이 방법이 저마다 다르고 복잡해서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란 쉽지가 않다. 이런 상황 속의 선택은 순간의 감정을 앞세우거나 혹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한 결정일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우리는 많은 우선순위를 손에 쥐고 있으려 한다. 순위와 차례를 정하지 못하고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에 선택의 순간에 어려움을 겪고는 한다. 잠시 내려놓는 것이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닌, 우선순위의 위치를 바꾸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일 것이다.




 인생의 문제를 잘 풀기 위해 각자의 우선순위에 대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겠다. 그 과정은 타인과 공유하는 순간이 아닌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 단계에서 깨닫게 된다. 머릿속에 머물며 자주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습관이 되고 미소 짓게 하는 건 무엇인지. 그와 반대로, 내게 자극이 되어 서늘함을 주는 건 무엇인지. 취할 것과 제거해야 할 일에 시비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런 질문과 기다림의 시간을 마주했을 때, 자신을 알아가는 지적 성장의 과정이 발현되기 마련이다. 인생의 기준과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결코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되기를 바란다.


 온전히 자신과의 시간을 쌓아 만든 인생의 우선순위를 잘 지켜낼지는 확신할 수 없다. 수많은 삶의 문제들에 각자의 기준을 적용시키며 현명하게 해답을 구하기에, 인간은 작은 자극에도 흔들릴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인생의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다는 건, 책가방 속에 넣어두기만 해도 안정감을 주었던 영어 교재처럼, 언제든 불안할 수 있는 인생에 꺼내어 보며 다시 암기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참고서 같은 것이다. 어려운 문제지 앞에서도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며 조금은 덜 흔들리고 덜 불안케 하는 힘이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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