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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Oct 15. 2021

엄마는 왜 매일 밥,밥,밥 할까

엄마의 한끼가 지닌 무게

근방에 사는 엄마와 함께 산책을 할 때 였다.

첫째가 요즘 입이 짧아졌는지 반찬투정을 해서 힘들다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 왈

그러니까 진작에 요리 좀 배우라고 했잖아

잔소리가 시작될 참이었다.      

결혼 9년차, 육아 8년차인 나는 요리를 못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친정엄마는 내 요리에 불만이 많으시다. 더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로, 더 다양하게 해먹이라는 우리 엄니의 말씀은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그 말을 듣자마자 버럭 화를 내버렸다.


“엄마! 엄마는 딸 손 안보여? 매일 돌밥돌밥 한다고 손에 습진이 심하게 생겼어. 밤에는 간지러워서 긁느라고 잠도 제대로 못자. 거기다가 요즘 나 비염이 얼마나 심한데 그래. 하루 종일 재채기 하고 나면 저녁에는 오장육부가 아픈 느낌이란 말이야. 내가 여기서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며 역정을 냈다. 사실이긴 했다. 코로나가 일상에 침투하면서 외식을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얼마 전까지 첫째는 급식도 먹지 않고 하교했던 터라 나의 일상은 말 그대로 돌밥돌밥이었던 것이다. 매번 새로운 반찬, 국, 찌개가 올라오길 바라는 아이들 때문에 내 손은 습진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엄마라도 알아주길 바랬건만,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긴커녕 요리를 배웠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니, 울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놈의 밥, 밥, 밥... 엄마는 오전에 만나면 ’점심 뭐 먹니?‘ 물어보고, 오후에 만나면 ’점심은 뭐 먹었니, 저녁은 뭐하니?‘ 한다. 밥이 그렇게 중한가? 싶어 짜증이 났다. 돌이켜보면, 그 역정에는 ’나는 엄마처럼 밥만 하면서 살기 싫다니까‘라는 메시지가 들어있기도 했다.  

    



나와 남동생이 어릴 때 만해도 외식이라는 건 일 년에 몇 번 이벤트가 있을 때만 가능했던지라, 매일 엄마가 손수 끼니를 해주셨다. 엄마가 직접 돼지고기 칼집 내고 후추, 소금 뿌려 빵가루, 계란 입혀 튀겨준 돈까스, 간 고기에 양념하고 동글동글하게 모양내서 가지런히 줄 세운 함박스테이크, 모닝빵에 양상추, 토마토, 오이, 양파 넣고 홈메이드 함박스테이크 넣고 케찹 뿌려 만든 햄버거, 식빵에 햄, 옥수수, 피망, 양파 올려 구워준 피자빵, 설탕 솔솔 뿌린 토마토까지. 엄마는 매일 정성 가득한 밥상을 차려 주셨었다. 오죽하면 아줌마들 사이에서 4시면 콩나물 다듬으러 집에 가는 엄마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였다. 중고등학생 때에도 급식을 안해서 매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던, 고등학교 야자할때는 도시락을 2개나 싸주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내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배부른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식당, 빵집, 떡집이 가득하고, 손가락만 놀리면 30분도 안되서 배달 오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엄마한테 쏘아붙이고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띵동 하고 벨이 울린다.

나가보니 엄마가 바리 바리 싸준 반찬과 국을 든 아빠가 문 앞에 서 계신다.      

백신 맞고 힘들때, 엄마 밥상은 특효약이다

뜨끈하고 얼큰한 대구탕, 맛깔나는 오징어채 볶음과 어묵볶음, 시금치나물, 알타리 무김치.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육수를 빼고, 재료를 손질하고, 김치에 양념을 버무렸을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의 밥, 밥, 밥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던 것이다. 속도 모르고 짜증만 낸 내 자신이 너무 밉다.     


사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는 집안일만 하기에도 너무 바쁘셔서 같이 놀아준다거나, 다정하게 교감해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알아서 책 읽거나, 뒹굴거리면서 시간을 보냈고 내 일은 내가 하는 K-장녀로 컸다. 우리와 잘 놀아주거나 책을 읽거나 하진 못했지만, 그 때도, 지금도, 엄마는 매 끼니에 엄마의 마음을, 사랑을 함께 차려냈던 것 아닐까.무뚝뚝한 성정에 “사랑한다“고 곰살맞게 말은 못하고, 따끈한 밥 한끼로 마음을 전하셨던 것이다.

습진으로 짓무른 딸의 손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만들었을 엄마의 마음.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본인처럼 맛있는 집밥으로 사랑을 전하길 바랬을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짐작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엄마처럼만 살면 인생 성공이라고. 엄마처럼만 가족에게 사랑을 하루 세번 전하는 인생을 살자고.


오늘은 소고기와 미역 들들 볶다가 육수에 푹 우리고 들깨 듬뿍 넣은 소고기들깨미역국을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려고 한다. 이제는 내 마음을 전할 차례니까.     

아직은 부족하지만 마음은 알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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