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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달 Feb 24. 2022

아이 친구 엄마는 내 친구가 아니다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점차 인간 관계가 (의도치않게) 미니멀해지더니 어느 순간,

“나는 왜 이렇게 친구가 없지?”

하는 생각에 다달았다.      


변명하자면, 친한 친구들 중에 내가 가장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생활 반경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달라 만나기가 힘들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아이 친구 엄마들도 분명 많았던 것 같은데... 그런데 막상 막역한 사이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문제있는 사람인가…?


첫째 10살, 둘째 6살. 그동안 아이를 통해 많은 인연을 맺었다. 문화센터에서, 유치원에서, 놀이터에서, 학교에서 오며 가며 만난 엄마들. 대개가 좋은 분이었고, 그 중에서는 아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계기로 알게 되었다면 더 좋았을 분들도 있었다. 물론, 나와 잘 안맞는 분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이를 통해 알게 된 인연들은, 일반적인 관계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먼저, 생각보다 쉽게 친해진다. “어머,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 한 마디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륵 풀리고, 상대 아이와 연령이 비슷하면 금상첨화인 관계. 그때부터는 아이의 생활(먹고 자고 놀고 싸는 등의 하루 일과), 신체 발육, 교육 등에 대한 대화가 끊임없이 오간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많은 개인 정보가 오가기 일쑤이다. 본인의 육아 상황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하는 일(휴직 상태인지, 퇴사 상태인지 여부), 남편이나 다른 가족이야기까지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친해지는 반면 이 인연은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유아를 키울 땐, “이 엄마랑 잘 맞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고 다가가면 되지만, 아이가 클수록 아이들의 합이 잘 맞는지 여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내 경우에도 아이 친구 엄마와는 잘 맞았지만, 아이들 기질이 다르다보면 플레이데이트를 하다가 누군가 울고 누군가 싸우고 누구는 집에 가버리는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두어번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그 엄마와의 만남은 흐지부지 된다. 내 아이가 매번 울거나 속상해하거나 억울해하는 상황이 생기면 (그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 자연스레 만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아이가 친하면서 그 아이 엄마와 내가 친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물론 그런 행운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크면 크는 대로 누가 공부를 잘하네, 누구는 여행을 갔다왔네, 누구 집에는 뭐가 있네. 등등 묘한 경쟁 구도가 그 인연을 갈라놓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누군가는 복직을 하고 누군가는 이사를 하는 등의 이유로 멀어지기도 한다.       

© AdinaVoicu, 출처 Pixabay

가까워진 아이 친구 엄마를 ’친구‘라는 관계 정의 속에서 대하다가 상처 입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친구라 하면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갈등이나 다툼이 있더라도 그것을 딛고 우정을 키워나가는 관계일진데, 아이 친구 엄마와는 한발자국 가까이 갔다가도 한순간 두발자국 아니 열발자국 멀어질 수도 있는 관계였다.   

   

’아이 친구 엄마‘라는 특수한 관계는 무엇일까. 공적인 관계도 아니고, 완전 사적인 친구도 아닌 관계. 아이 친구 엄마는 친구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고, 단순한 이웃도 아니다. 그저 그 관계를 담을 적절한 단어가 없을 뿐이다. 명명 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쉽게 당황하니까. 그뿐이다. 어떤 관계는 ’친구‘라는 말을 비껴서 있을 때, 서로가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 친구 엄마들과 일부러 벽을 쌓을 필요는 없다. 그저 ’친구‘라는 관계에 얽매여서 휘둘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 친구 엄마는 때로 커피나 브런치 메이트가 되고, 때로는 육아/교육 전문가가 되며, 때로는 헬육아를 견디게 해주는 전우라고 느껴질 정도로 뜨거운 전우애를 느끼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정인이 사건 등 아동 학대, 교육 기관 비리 등 사회적인 이슈에 발걷는 것도 아이 친구 엄마로 일컬어지는 관계이고, 이사, 입원 등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도 달려와주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 좋은 관계를 왜 마다 한단 말인가.      



’그해 우리는‘ 이라는 드라마 마지막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이 함께 유학을 가자는 제안을 받고 고민을 한다. 사랑하는 남자 친구를 따라갈 것 인가 지금의 삶을 더 일굴 것인가 하는. 골똘히 고민하던 여자주인공은 잠든 할머니를 안으며 혼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할머니, 할머니가 그랬잖아. 이제 버티는 삶 그만하고, 곁에 사람도 두고 하고싶은거 하면서 재미나게 살라고. 그래서 나 이번엔 정말 눈 딱 감고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려고.      
근데 있잖아 할머니. 나 그렇게 살고 있었더라. 나는 항상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었어. 꽤 괜찮은 순간들이 항상 있었어.
내 인생 초라하게 만든 건 나 하나였나봐


하며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친구, 회사를 처음 차릴 때부터 손을 내밀었던 선배, 회사가 힘들  때 부터 잘되는 순간까지 함께 했던 직장 동료들을 떠올린다.

생각해보면  번도..  번도 우리는 혼자인 적이 없었다. 친구라는 말에 갇혀 상처받고 상처 주지 말고, 어떤 카테고리에 넣을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인생 빛나게 만드는 것도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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